블룸버그 "현대차 사드 이전부터 중국서 부진" vs 현대차 "중국 판매량 증가하다 3월 이후 꺾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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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현대ㆍ기아자동차의 상반기 중국 판매 실적이 전년 대비 반 토막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는 기사가 국내 언론에 실렸다. 이른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 이후 중국 내 반한 감정 때문에 한국 자동차 판매가 부진하다는 게 골자였다.

블룸버그 "현대차, 중국서 최근 몇년간 고전" 칼럼 #중국인 관심 큰 SUV 시장서 고전한 게 주 요인 #현대차 "중국 판매량, 성장세 유지하다 사드 파문 이후 하락"

중국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속한다. 가장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도 차를 가장 많이 파는 시장이 중국이다. 이 때문에 사드 배치 갈등으로 인해 국내 주요 기업이 해외 주요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소식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올해 2월 전기차 모델 중국 생산이 결정된 베이징현대의 올 뉴 위에동 [사진 중앙포토]

올해 2월 전기차 모델 중국 생산이 결정된 베이징현대의 올 뉴 위에동 [사진 중앙포토]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조금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셸비 반조는 현대ㆍ기아차가 중국의 최근 몇 년간 중국 시장에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조한 판매 실적이 올해 초 불거진 사드 보복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조는 칼럼에서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중국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47% 하락했다고 전하면서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이 한국 자동차 업계에 타격을 줬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의 최근 실적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 시장 판매량은 약 42만9000대로, 지난해(80만8000대)보다 47% 감소했다. 이른바 사드 보복이 시작된 3~5월 현대차 판매 대수는 월별로 지난해보다 44.3~65% 줄었다. 6월 판매량은 63.9% 감소했다. 사드 때문에 타격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블룸버그는 하지만 중국 내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부진이 사드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사드로 인한 보이콧이 시작되기 몇 년 전부터 두 회사는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을 잃어 왔다는 것이다.

현대ㆍ기아차의 중국 내 성장률이 하락한 핵심 이유는 중국에서 인기를 더하고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승기를 놓쳤기 때문으로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소득 수준이 오르고 레저를 즐기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중국인들이 공간이 넓은 SUV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차체가 크고 안전하다는 인식이 소비자에게 먹히면서 SUV 붐이 일었다. SUV 판매는 전체 자동차 시장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ㆍ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승부를 볼 마땅한 SUV 모델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게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 브랜드의 중국 SUV 시장 점유율은 2008년 19.3% 올 3월 6.3%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42.2%에서 18.1%로 점유율이 줄어든 일본보다 감소폭이 더 컸다. 일본ㆍ미국ㆍ독일을 포함한 4개국 중 한국자동차의 점유율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국가별 시장 점유율.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미국ㆍ한국ㆍ일본ㆍ독일ㆍ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다. 중국 업체 점유율은 2008년 25.5%에서 올해 3월 55%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 업체 점유율은 19.3%에서 6.3%로 줄었다. [블룸버그] 

중국에서 판매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국가별 시장 점유율.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미국ㆍ한국ㆍ일본ㆍ독일ㆍ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다. 중국 업체 점유율은 2008년 25.5%에서 올해 3월 55%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 업체 점유율은 19.3%에서 6.3%로 줄었다. [블룸버그]

한국 자동차가 잃은 시장 점유율은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가져갔다. 중국 자동차 업체 시장 점유율은 같은 기간 25.5%에서 55%로 증가했다. 지리자동차 등 중국 업체들이 소비자의 욕구를 재빨리 파악해 발빠르게 대응한 게 주효했다. 지난 10년 새 중국 업체들은 품질과 성능에서 발전을 이뤘고, 해외 브랜드보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면서 시장을 늘렸다.

해외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미국과 독일은 SUV 시장 점유율을 늘렸다. 미국은 5%에서 9.7%로, 두배 가까이로 늘었다. 독일은 8%에서 10.9%로 증가했다.

'사드 보복' 같은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2012년 조어도(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 민심이 돌아서면서 중국 내 입지를 잃기 시작했다. 이후 분쟁이 잊혀졌을 때 쯤에는 중국 업체들이 기술력을 갖게 됐다.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끝내 40%대의 과거 점유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 자동차업계도 이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세 분야인 SUV, 전기 자동차, 럭셔리 모델에서 현대ㆍ기아차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현대·기아차가 중국 시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다양한 SUV 모델 등 중국 업체들이 성능이 괜찮은 신차를 쏟아내고 있고, 경쟁이 심화하면서 앞으로는 가격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셸비 반조 칼럼니스트는 “한국 자동차 업체가 중국에서 시장을 회복하기 원한다면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정치적 문제를 걱정하는 대신 스스로 할 수 있는 비즈니스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세계 어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퀄리티 높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으면 단기적인 정치 문제는 극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는 중국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 대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2014년 판매량 176만대에서 2015년 167만대로 다소 줄기는 했으나, 이를 제외하고 지난 9년 간 판매량이 꾸준히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중국에서 모두 179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2002년 중국 진출 이후 최대 판매량이다.

판매 대수는 늘었지만 성장률은 둔화하고 있다. 2014년에 비해 2015년 판매량이 감소(-4.9%)했고, 2015년에 비해 2016년 판매량은 6.7% 증가에 그쳤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도 비슷한 추이를 보여준다. 2012년 최고 10.5%를 차지한 점유율은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8.1%로 떨어졌다. 2008년의 점유율과 같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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