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USB 개발자, 이스라엘 '벤처 영웅' 도브 모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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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고난을 견뎌내는 힘이다. 창의적ㆍ혁신적인 아이디어보다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고, 위기에 대처하고 압박에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더 필요하다.”

"창의성ㆍ소통능력보다 역경 이기는 힘이 중요 #실패 두려워말고 새로운 시도 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

세계 최초로 USB 메모리를 개발한 이스라엘의 벤처 영웅, 도브 모란(62) 그로브벤처 회장은 “IQ(지능지수)ㆍEQ(감성지수)보다 AQ(Adversity Quotientㆍ역경지수)가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를 졸업한 그는 1989년 엠시스템즈를 설립, USB 메모리를 개발했고 2006년 샌디스크에 회사를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무려 16억 달러(약 1조8000억원)였다. ‘제8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를 3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만났다. 지난해 이스라엘에서 펴낸 그의 첫 책 『100개의 문과 미친 아이디어(100 Doors and Crazy Idea)』의 한국어판(아라크네)도 최근 출간됐다.

방한한 이스라엘 벤처영웅 도브 모란. "사업차 40∼50차례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한국인들은 똑똑하고 직설적"이라고 말했다. [사진 아라크네]

방한한 이스라엘 벤처영웅 도브 모란. "사업차 40∼50차례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한국인들은 똑똑하고 직설적"이라고 말했다. [사진 아라크네]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의미다. 기업가에게만 필요한 정신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회사원이 서류를 작성할 때, 페인트공이 색을 만들 때, 남편이 아내에게 꽃을 선물할 때 등의 상황에서도 기업가 정신이 발휘될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실패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라. 이스라엘에선 지난해 1600개의 벤처회사가 생겼고, 이 중 10%  정도가 살아남았다. 나머지 1440개 회사는 실패했지만,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인맥과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어떤 실패를 했다는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할 우려를 제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역경을 이기는 힘 역시 실제 상황 속에서 길러진다.”

그는 자신의 실패 경험에 대해서도 솔직히 털어놨다. 그가 엠시스템즈를 매각한 뒤 2007년 설립한 모듈식 휴대전화 회사 모두(Modu)는 큰 손실을 남기고 2010년 문을 닫았다. “투자자였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1억 달러(약 11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했다. 그 자신도 1500만 달러(약 170억 원)를 잃었다. “100여 명 직원들과 투자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9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그는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발명하자’‘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자’고 도전했던 경험이 직원 모두에게 진정한 보상이 됐을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큰 실패 이후에도 그의 기업가 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2011년에는 키보드 ‘스마타입(Smartype)’ 개발회사 코미고를, 또 2015년에는 벤처투자회사 그로브벤처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엠시스템즈 매각 대금만으로도 평생 안락한 삶이 보장돼 있을텐데, 계속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도전하고 배우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다. 사업의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알지만, 매번 도전할 때는 '100% 성공'이라는 확신을 갖고 시작한다. 그래도 실패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인생 아닌가.”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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