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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표절은 뻔한 의혹? 더 주목받은 인감 빌려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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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의혹의 진위나 경중보다 ‘새 의혹인가, 뻔한 의혹인가’라는, 이른바 ‘각성효과’가 청문회 통과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객관적 사실을 놓고 문제점을 가려내야 할 청문회가 여론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인사청문회 ‘각성효과’ 새 변수 #제도 15년 넘자 기존 유형엔 무감각 #신종 수법에 지나치게 관심 쏠려 #제대로 된 검증 대신 여론재판 우려

‘각성효과’가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야당에서 ‘부적격 3종 세트’라며 집중포화를 쏟아내고 있는 김상곤(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송영무(국방부)·조대엽(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다. 당초 여권에선 송영무·김상곤 후보자에 대해 “마냥 버틸 수만은 없지 않은가”라고 할 만큼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송 후보자의 경우엔 방산업체 등에서 고액 자문료를 받았다는 점과 20여 년 전 음주운전을 한 이력 등이 분명한 ‘팩트’였고, 김 후보자의 경우엔 논문 표절은 물론 “자본의 족쇄를 거부하고 사회주의를 상상한다”는 이념 편향성의 ‘강도’가 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청문회를 거치면서 모든 후보자의 사안 중 가장 관심이 집중된 건 조대엽 후보자의 ‘인감 빌려주기’였다. 지난달 30일 청문회에서 조 후보자는 한국여론방송의 주식 50%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인감을 관련 회사에 무턱대고 빌려줬다는 점이 새롭게 드러났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조 후보자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됐던 ‘음주운전’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인사청문회 역사가 15년을 넘기면서 그간 사퇴의 주된 이유였던 위장전입·전관예우 등에 대해 무감각해졌다”고 지적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피로현상처럼 청문 후보자의 위법성이 반복되면서 집단 망각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반면 여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의혹에 대해선 ‘쏠림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실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경우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던 건 부동산 투기, 이중국적 등이 아니라 딸이 ‘교장집’에 이사했다는 디테일이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각성효과 얘기가 나오는 건 엄정해야 할 인사청문회가 원칙은 실종된 채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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