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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30년 묵은 노사관계 틀 바꿔야 양질의 일자리 생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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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용근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김용근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모든 제조업 특히, 대규모 근로자들이 수만 개의 부품을 조립해 만드는 자동차 산업에서는 핵심 경쟁력 요소가 인건비와 생산성 그리고 근로 유연성이다. 이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있는 노사관계야말로 회사와 고용을 지키고 국민 경제에 기여하는 관건이 되고 있다.

회사는 고용보장, 노조는 유연성 #선진국들은 빅딜 협상 정착시켜 #한국은 힘에 의한 이익챙취 연례화 #선진국 살필 신사유람단 파견을

이에 따라 미국·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일본 등 주요 선진 자동차 생산국들의 노사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해 회사는 ‘고용’을 보장하고, 노조는 ‘임금과 근로 유연성’을 양보하는 빅딜 협상을 정착화하고 있다. ‘회사가 부도나면 노조도 부도난다’라는 인식으로 협조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신차 개발에 장기간이 소요되는 특성을 고려해 실질적인 임금·단체협상 주기를 3~4년, 노조 위원장 임기도 4년 단위로 하는 안정성까지 확보했다.

임금 구조에 직무와 성과급 비중이 높고, 해고 규정에도 경영상황 반영 여지를 두고 있으며, 일시적 정리해고와 파견제도도 허용돼 있다. 개인별 근로 시간의 탄력적 운용과 함께 사업장 내 전환 배치와 공장간 물량 조정은 사용자 측의 고유권한으로 인정되고 있다. 노사 간 교섭권 균형을 위해 파업 요건은 까다롭고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노사관계를 바꾸기까지 당연히 노조가 물리적 행동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경쟁력과 일자리’라는 국가 과제에 따라 노사 간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사회적 설득, 최고 통치권자의 결단력과 조정의 리더십이 총동원돼 이런 시스템이 확립됐고, 경제활력 회복과 고용 증대로 보상받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독일 슈뢰더 총리, 2009년 미국 GM구조조정시 오바마 대통령, 2012년 스페인 라호이 총리, 2015~2016년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 등이 대표적이며 최근 취임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2015년 경제장관 재임시 부터 강력한 노사관계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은 이러한 노사관계 선진화 물결 밖에서 30년 된 구형 노사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갈라파고스’로 남아 있다. 연공 서열에 의한 호봉제 임금체계, 해고의 경직성과 파견제도 불법화, 생산·투자·물량조정·전환배치에 대한 노조동의제, 야간·심야·휴일근로의 중복 할증제 등에 따라 임금비용, 생산성, 근로 유연성에서 해외 기업보다 경쟁력이 원천적으로 불리하다. 뿐만 아니라 파업도 노조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가결되고, 공장 점거라는 적극적 파업 형태도 인정되는데 비해 이에 대응하는 사용자의 대체근로 투입은 불법화되어 있어 노사 간에 진지한 대화와 협상도출보다는 노조의 힘에 의한 이익쟁취 방식이 연례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개인별 임금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이며 회사의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인 12%를 넘나들고 있어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나 협력업체 지원 여력이 뒤질 수밖에 없다.

올해도 국산차가 내수, 수출 모두 고전하고 있음에도 어김없이 노사 간 투쟁적 협상과 힘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생산기지는 해외로 이전되고 외국 투자기업의 경우에도 글로벌 본부에서 한국을 고비용 국가로 분류해 추가 투자는커녕 생산 물량을 외국 공장으로 전환할 가능성까지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산량이 감소하고 고용도 줄어들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노사 관계가 선진국형이라면 정규직을 더 채용할 수 있으나 현 제도에서는 꺼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경영 현장의 심정이다.

우리의 노사관계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매우 힘든 정치적 과정이겠지만 선진국 사례처럼 글로벌 경쟁력 강화, 노사공생,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목표에 따라 통치권자의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아래 노사정이 진정한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한다면 임금과 고용, 생산성과 보상체계, 근로 유연성과 안전성 간의 합리적 균형점이라는 역사적 성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노·사·정·학계가 함께 선진국 사례를 직접 살펴보는 신사유람단 파견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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