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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수면위 오른 한미FTA 재협상론…‘무역 균형'앞세워 통상압박 이어갈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단독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단독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미국은 많은 나라에 무역적자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걸 허용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FTA 재협상 다시 거론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폭 크다" 기존 입장 재차 밝혀 #자동차, 철강 등 특정산업도 거론 #정부, "진의 파악..대미 무역흑자 축소 노력 지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수술대에 올라갈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이미 미국 측은 법률서비스 시장 개방,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투명성 등을 두고 “한국의 FTA 이행이 부진하다”고 지적해 왔다.

 이번에도 ‘재협상론’의 빌미는 한국의 대(對)미 무역수지 흑자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우리의 대(對)한국 무역 불균형은 한·미 FTA가 시행된 후 두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2012년) 이전인 2011년 116억3900만 달러였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016년 232억4600만 달러로 늘었다.

 미국 상무부가 추정한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77억 달러 수준으로 한국 통계보다 더 많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올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줄었다. 올 1~6월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액은 81억6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9% 급감했다. 수출은 소폭 감소한 반면 수입은 두 자릿수 증가를 기록해서다.

 올해 상반기 대미 수출은 340억56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0.9% 줄었다. 반면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이 기간 258억9100만 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1% 늘었다. 한·미 FTA 재협상, 환율조작국 지정 등의 칼을 쥔 미국의 통상 압박으로 한국이 미국 제품에 대한 수입을 늘린 결과다. 정부는 대미 무역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셰일가스 도입을 중심으로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고 자동차와 항공기 등 제조업 분야 수입 확대도 추진했다.

 무엇보다 한·미 간 무역 불균형은 양국의 경제·사회구조 차이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2일 ‘한·미 FTA 재협상 관련 양국 정상회담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은 미국에 비해 저축 지향적이고 제조업 중심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며 “미국은 최근 경제가 호조를 보임에 따라 수입 수요가 증가해 한·미 간 무역수지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위적으로 무역수지 규모를 조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이런 만큼 한국이 대미 흑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는 점을 적극 알리면서 산업별 특성에 맞춰 재협상 현실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의 요구는 결국 한·미 간 ‘무역 균형’을 맞춰 달라는 것”이라며 “시장이 왜곡되지 않는 범위에서 미국산 수입을 늘리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미국의 한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규제가 지나친 점이 없는지도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한국 입장에서 자동차 등의 대미 수출이 줄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무역적자의 주범으로 자동차를 꼽고 있다”며 “자동차·철강 등 미국의 타깃이 된 특정 산업을 중심으로 FTA 재협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조직 정비도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논란이 된 통상조직을 산업부에 남기기로 하고 통상교섭본부장을 산업부 내에 신설하기로 했다. 차관급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장관 직함을 단다. 하지만 아직 새 정부의 산업부 장관도 임명되지 않았다. 허윤 원장은 “하루빨리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의 진의를 파악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송인창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는 합의사항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며 “실무 협의 등을 통해 미국의 입장을 파악하고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적절히 줄이는 등의 노력을 지속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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