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키운다는 암묵적 동의 … 파격적 임대료와 그림 도구 지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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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14면

베를린서 활동 중인 화가 김혜련

알렉산더광장에 있는 김혜련작가의 작업실.

알렉산더광장에 있는 김혜련작가의 작업실.

베를린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련 화가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원래 한국에서 독문학을 전공했지만 미술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 예술종합대에서 본격적으로 미술 실기를 다시 배우기 시작해 학사와 석사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베를린공대 예술학과에서 에밀 놀데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1994년부터 베를린조형예술작가협회 정식 회원이 되어 영주권을 받고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베를린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세계 정상급 컬렉터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회장 등 독일과 유럽 메이저 컬렉터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파주 헤이리와 베를린의 작업실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그를 알렉산더플라츠 인근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곳에선 옛 동베를린의 상징이었던 거대한 텔레비전 송신탑이 창밖으로 내다보인다.

화가로서 베를린에서의 하루 일과는.
“보통 아침 8시 반에 스튜디오로 출근해 피곤할 때까지 작업한다. 점심은 샌드위치 같은 것으로 싸 갖고 와서 먹고 지칠 때까지 작업실에서 안 나온다.”
왜 베를린인가.
“예술도시로 만드는 역량과 동력이 넘치는 곳이다. 이곳에 오면 화가로서 볼 게 많고 영감을 받게 된다. 수많은 철학자를 배출해낸 곳답게 도시의 공기가 가볍지도 않고 뭔지 모르게 진중함이 깔려 있다. 베를린은 열려 있는 도시지만 에너지를 엉뚱한 데 뺏기지 않고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라 좋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베를린에서 공부했다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고, 1년 내내 세계적인 작가들의 수준 높은 전시를 볼 수 있으니 자극도 되고 내 작품의 수준을 가늠해 보게 된다. 게다가 예술가를 지원해 주는 도시의 합리적인 정책이 매력적이고 작품창작에서 수집가에 이르는 전체 시스템이 건강하다.”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을 말해 달라.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다. 이 작업실이 위치한 곳은 과거 동베를린의 통신회사 건물이었는데, 통일 뒤 치열한 논의를 거친 뒤 예술가와 문화적인 용도로 쓰기로 결정됐다. 5층 건물로 한 층에 20개 정도의 작업실이 있다. 3개월 이상 임대료가 밀리지 않는 한 영구임대고 임대료는 물론 파격적 수준이다. 예술가를 키운다는 암묵적 동의가 이 도시에는 있다. 예술작가협회 정식 회원증이 있으면 캔버스와 물감 같은 그림 도구들을 일반인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분단과 통일 주제 작업도 적지 않게 하는 것으로 아는데.
“알렉산더 광장 부근에 작업실을 얻은 이유는 과거 동베를린 지역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공간이 주는 의미는 무의식적으로도 작품에 작용한다. 나는 최근에 압록강·백두산을 다녀왔는데 새삼스레 분단의 운명을 캔버스에 녹이고 싶어졌다. 작가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알아야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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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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