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에 발목 잡힌 경기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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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소비가 한국 경제의 애를 태우고 있다. 경기 회복 신호가 속속 포착되면서 성장률 전망치도 잇따라 상향 조정되고 있지만 소비만큼은 여전히 한겨울에 머물러 있다. 소비 회복 지연이 전반적인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조속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월 반짝 상승 뒤 한 달 만에 감소 #5월 황금연휴에도 부진은 여전 #제조업 재고 증가, 기업 가동률 하락 #“소비 회복 대책 빨리 시행해야”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5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소매판매)는 전달보다 0.9% 감소했다. 소비는 4월에 전달 대비 0.7% 증가하면서 본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지만 한 달 만에 다시 감소로 돌아섰다. 소비는 경제의 양대 축인 수출과 내수 중 내수를 떠받치는 핵심 지표다. 지난해 말부터 수출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내수 회복은 속도가 더딘 편이다. 투자는 회복되고 있지만 소비가 여전히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 연속 전달 대비 감소했던 소비는 2월에 반짝 증가했지만 다음달 바로 감소로 반전했다. 이후에도 4월 증가, 5월 감소 등 오락가락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5월에는 최장 11일의 황금연휴가 있었는데도 소비가 감소해 실망감을 키우고 있다. 연휴 기간에 해외로 나간 내국인이 해외 소비는 늘렸지만 국내 소비는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당시는 미세먼지가 심해 바깥 나들이 인파가 줄면서 소비 감소에 영향을 끼친 측면이 있지만 소비 부진에서 쉽게 탈피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소비 침체는 회복 기미를 보이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한국 경제는 수출이 이끌고 생산과 투자가 뒤를 받치면서 회복세를 보였다. 1분기에 예상을 뛰어넘는 1.1%의 깜짝 성장을 이뤘고 2분기 성장률도 양호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을 관망하던 연구기관들도 최근 들어 속속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달 산업연구원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8%로 높였고 한국경제연구원도 2.5%이던 전망치를 2.9%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달 2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가경정예산이 빨리 집행된다면 다시 3%대 경제성장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게 경제팀의 전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소비 침체가 길어지면 장밋빛 전망의 현실화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 ‘5월 산업활동 동향’에는 소비 침체가 경제 전반에 미친 악영향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5월 전체 산업생산이 전달보다 0.3% 감소하면서 4월(-1.0%)에 이어 두 달 연속 감소했는데 소비 침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와의 연관성이 큰 도소매업 생산 감소(-1.3%) 등의 영향으로 서비스업 생산이 7개월 만에 감소(-0.3%)하면서 전체 평균을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제조업 재고의 2.5% 증가와 제조업 평균 가동률의 0.5%포인트 하락을 소비 침체와 연결하는 시각도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5월 산업활동 동향 자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재고 관련 통계”라며 “소비가 늘지 않기 때문에 쌓이는 재고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기업 가동률이 낮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 회복의 뒷받침 없이 진정한 경기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소비심리가 회복될 수 있다는 신호가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6월 소비자심리지수가 111.1로 6년5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소비심리 회복이 곧바로 소비 회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 증가와 정부의 재정 확대 방침 천명에 따라 소비자심리지수가 상승한 것 같다. 하지만 소비는 심리 호전만으로 증가할 수 없고 실제 소득이 늘어야 증가할 수 있는 만큼 심리 회복이 소비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속단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김영익 교수는 “호전되는 소비 심리를 실제 지표가 따라가지 못하면 소비자의 실망감이 커져 심리가 다시 꺾일 수도 있다”며 “수출 증가세도 올 초만 못한 상황이라 소비를 회복시킬 수 있는 대책을 빨리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진석·이승호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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