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사실 고백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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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성균관대학교 대나무숲 캡처]

[사진 성균관대학교 대나무숲 캡처]

학창 시절 왕따(집단 따돌림)를 당해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던 한 대학생이 남긴 글이 화제다.

26일 페이스북 페이지 '성균관대학교 대나무숲'에는 "나는 왕따였다"는 말로 시작하는 장문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대학생이 된 지금이야 '난 그냥 혼자가 편해'라며 웃을 수 있지만, 학창 시절 왕따는 단지 혼자라서 힘든 것이 아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누구나 이유 없이 미움을 받을 수 있듯 글쓴이도 그랬다. 그는 몇 주 동안을 방안에서 밤새 울며 동이 트는 것을 두려워하다 부모님에게 왕따로 괴롭힘당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엄마. 나 급식 취소해주세요. 도시락 먹을래요"

"밥이 별로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우리 학교 급식 먹으려면 지문 인식해야 하잖아요. 내 손에 땀이 많아서 그런지 인식이 잘 안 돼서…"라고 머뭇거리던 그는 "친구들이 '사람도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라며 나를 비웃어요"라고 말을 던졌다.

글쓴이 부모님은 충격을 받으셨고,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글쓴이를 깨우지 않았다. 글쓴이 아버지는 담임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담임은 쉬는 시간마다 글쓴이를 불러냈다. 글쓴이를 교실에 혼자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년을 앞뒀던 선생님은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방치한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글쓴이 부탁에 선생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해 학생들을 혼낸다거나 주의를 준다는 등 티를 내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를 쉬는 시간마다 불러내 교무실 청소를 시키고, 화분에 물을 주러 오라 하고, 수능 4점짜리 주관식 문제를 풀게 했다.

아침마다 글쓴이 자리엔 우유가 터져있거나 걸레가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말끔해졌다. 글쓴이는 친구들의 장난이 끝난 줄로만 알았으나 10분 정도 등교를 일찍 했을 때야 알았다. 먼저 출근한 선생님이 책상 낙서를 지우고 물티슈로 닦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글쓴이는 1교시도 들어가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가 펑펑 울었다.

글쓴이는 전학을 포기하고 학교에 남았으나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다만 선생님 사진 한장 없는 것이 후회돼 졸업앨범 속 선생님 사진을 친구에게 받아두었다.

글쓴이는 "얼마 전 선생님의 장례식이 있었다"면서 "'선생님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너무 잘 안다'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한마디를 못한 것이 가슴에 메였다"고 선생님의 죽음을 담담히 써내려갔다. 그러면서 "대놓고 나를 위해 왕따 주동자들과 싸워주지 않은 것이 모든 사람의 기준에도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직도 눈만 감으면 물티슈를 쥐고 있는 그 주름진 손등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 글은 각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하며 인기 글로 떠올랐다. 글을 접한 네티즌 대부분은 "눈물이 난다" "좋은 선생님의 모습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됐다" 등 반응을 보였다.

다음은 해당 글 전문.

2017. 06. 26. 오후
<사는 얘기>
나는 왕따였다.
대학생이 된 지금이야 난 그냥 혼자가 편해, 라며 웃을 수 있지만
학창시절의 왕따는 단지 혼자라서 힘든 것이 아님을 당신들은 알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내게 이유는 없었다.
'치과에 간다고 체육대회 연습을 빠져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연습일정을 잡기 시작한 순간부터 미리 말해두었던 것이니 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몇 주 동안을 방안에서 밤새 울며, 동이 트는 것을 두려워하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엄마, 나 급식 취소해줘. 도시락 먹을래요.
왜? 밥이 별로야?
아니, 우리 학교 급식 먹으려면 지문인식해야하잖아요.
응.
내 손에 땀이 많아서 그런지 인식이 잘 안 돼서...
그래서...
친구들이 쟨 사람 새X도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고...
비웃어 나를..
얼마나 정적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겨우 꺼낸 말에,
아빠는 선생님께 전화를 해야겠다며 화를 내셨고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우셨다.
나는 학교에 말하지 말아달라고 나 그냥 조용히 전학 보내주면 안되겠느냐며 울었고,
다음 날 엄마는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늦은 점심까지 나를 깨우지 않으셨다.
이튿날 학교에 갔을 때 나는 여전히 왕따였고,
다만 아빠가 참지 못하고 학교에 전화를 했는지 담임 선생님께서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부르셨다.
정년을 앞둔 할아버지 뻘의 수학선생님이셨는데
첫 쉬는 시간엔,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내가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너희를 너무 방치한 거 같다며 미안해하셨다.
두번째 쉬는 시간엔,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물으셨고
난 이 학교를 떠나고 싶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그랬다.
선생님께선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
단지 그 지옥 같던 쉬는 시간에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교무실 청소를 시키시고,
당신의 자리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러 오라하시고,
수학성적이 이래서야 되겠냐며 옆에 앉아 수능 4점짜리 주관식 문제를 풀게 하셨다.
등교 후 내 자리엔 우유가 터져있거나, 걸레가 올라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아침일찍 와 치우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 항상 깨끗했다.
친구들의 장난이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평소보다 10분 정도 일찍 등교를 한 날 교실 창문으로 보니,
선생님께서 내 책상 낙서를 지우시고 물티슈로 닦고 계셨다.
그 모습에 나는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첫교시도 들어가지 않고 펑펑 울었다.
이후로 나는 전학을 포기하고 학교에 남았고,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단지 선생님 사진 한장 없는 것이 후회가 되어,
후에 친구에게 졸업앨범 속 선생님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얼마 전 선생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께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너무 잘 안다고,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그 한마디를 못 한게 가슴에 메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선생님의 방식이, 대놓고 나를 위해 왕따 주동자들과 싸워주지 않은 것이
나 아닌 모든 사람의 기준에도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도 눈만 감으면 물티슈를 쥐고 있는 그 주름진 손등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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