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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이제 다시, 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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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한국이 바뀌고 있습니다. 물건을 팔기 위해 죽 늘어섰던 상가에 잠시 쉴 수 있는 찻집과 멋진 그림을 걸어 놓은 갤러리가 하나둘 생겨나더니 이제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한참 앉아 있어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책 읽는 공간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책은 온라인으로 팔기에 가장 적합한 제품이어서 상행위의 전자화에서 가장 먼저 실용화됐습니다. 미국의 가장 큰 온라인 상점에서 처음 팔기 시작한 것이 책이었음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동네 서점은 다양한 재고를 갖추기도 어렵고 장소의 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아 경쟁에서 조금씩 밀려나더니 결국 많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프라인상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남은 몇 서점들이 공간을 늘려 손님들이 고른 책을 그 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하고, 유명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건 작은 책방들을 만들어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하기도 합니다.

최근 서울 강남에 10m도 넘는 거대한 책장이 인상적인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보기만 해도 압도되는 장관은 호그와트의 마법학교에 나오는 부엉이가 책을 물어다 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보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는 모습이라 인스타그램에 1만 건이 넘는 인증샷이 올라오며 순식간에 가볼 만한 장소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읽고자 하는, 그리고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커지고 있기에 이에 부응한 준비가 상권의 활성화를 이루게 한 것입니다.

이 장소에서 평일 저녁에 열린 저자들의 강연에 가 보니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현대화된 몰(mall)이라는 상권에 각기 다른 배경과 직업을 가진 분들이 모여 책을 읽고 글을 쓴 사람의 강연을 듣는 모습은 우리 사는 세상의 다양성과 미래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최근 수년간 ‘읽다’라는 행위보다 ‘보다’라는 행위가 꾸준히 늘고 있음이 데이터 속에서 확인됩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그림과 동영상의 형태로 정보를 받아보는 행위가 늘어나면서, 문자만으로 이루어진 글을 숙독하기보다 그저 쓱 훑어보는 일이 많아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다시 읽을 때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문자로 남기고 전하며 우리 종족 사피엔스는 빠르게 지혜로워졌습니다. 나의 지혜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혜를 또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라도 이제 ‘다시, 읽을 때’입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