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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당신의 노후는 안녕하신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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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조홍래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조홍래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지금 대한민국에서 금융산업의 역할은 무엇인가? 절대 빈곤 탈출이 지상 목표였던 개발 연대에는 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금융산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이를 위해서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저축 증진 노력이 필요했다. 한 마디로 금융이 산업의 혈맥이요, 젖줄이었기 때문이다.

과도한 거주비·자녀 사교육비 #소득과 무관하게 노후 갉아먹어 #퇴직·개인연금 세제혜택 늘리고 #위험·안전자산 배분, 수익 올려야

세월이 40년 넘게 흐른 후, 금융산업에서 국민 경제, 특히 산업계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이 사라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중에 자금이 부족하여 금리가 20%까지 치솟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시절이 아니다. 오히려 시중에 자금이 남아서 걱정인 세상이고, 적당한 투자처가 없어서 고민하는 자금이 넘치고 있다. 모름지기 경제 정책과 금융 정책의 목표는 장기적으로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정책의 핵심 과제 중의 하나는 이미 닥친 고령화 사회에서 어떻게 국민들의 노후 생활 수준을 보장할 것인가 이다. 여기에 지금 금융산업, 그 중에서도 자산운용업의 중요한 존재 이유가 있다.

노후 생활 수준을 확보하는 방편은 단순하다. 첫째, 젊을 때 꾸준히 소득이 있어야 된다. 둘째, 소득에서 저축을 많이 할 여력이 있어야 된다. 그리고 셋째, 저축에서 돌아오는 수익이 높아야 된다. 꾸준한 소득은 다름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정부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려는 분야다. 저축을 좀 더 많이 하려면 노후 생활과 무관하면서 국민 경제의 지속 성장과도 거리가 있는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과도한 거주 비용과 사교육비 지출이다.

최근 국내 학계의 연구 결과는 일관성 있게 거주 비용과 사교육비 지출이 연금 및 보험 가입자 숫자와 납입액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득의 고저와 무관하게 노후 생활 기반을 갉아 먹고 있는 거주비용과 사교육비 지출에 대해 정부의 특단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저축의 절대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방향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예컨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물론, 장기 투자에 대해서는 더욱 과감한 세제 혜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연금과 보험 상품으로 아무리 저축을 많이 했어도 수익률이 나쁘면 그만이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자산운용업과 투자자 개인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 투자다. 여유 자산을 굴리는 투자에서도 장기 투자가 중요하지만 은퇴 후 삶을 준비하는 투자에서는 최소한 20년에서 30년을 바라보는 안목이 필수다. 다음 달의 주가, 내년의 금리 수준을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의 입장에서 내년에 내가 지금의 직장을 다니고 있을지도 잘 모르는 판국에 어떻게 수십 년 후의 시장 주가와 금리를 알 수 있는가? 사실 자산운용업의 전문가들도 20년 후의 주가와 금리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20년 후 주가와 금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다름 아니라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 간의 배분이다. 과거 글로벌 시장의 데이터와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 구조를 가지고 연구하면 예를 들어 20년 후 은퇴할 예정인 나에게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배분을 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연구에 의하면 주식이나 채권 같은 개별 자산 내부의 수익률 보다 여러 개별 자산에 각각 얼마나 배분하였는지가 장기적인 투자 수익률 결정에 더 중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긴 호흡으로 은퇴 후의 소득을 담보하려는 투자자들은 무엇보다고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의 적절한 배분에 관한 현명한 판단을 해야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 배분은 당연히 투자자가 젊은지 아니면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지에 따라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은퇴를 앞둔 중년이 위험 자산에 지나치게 많이 투자해서는 안 되는 식이다. 여기에 전문적인 자산운용업의 역할이 등장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은퇴 후를 대비한 많은 투자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한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 자산운용업도 전 국민의 노후 대비를 위한 좋은 투자 상품 개발과 운용에 더욱 노력을 경주해야 된다.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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