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설립도 안 된 사회서비스공단, 보육계 결사반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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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국의 아동·보육 관련 13개 학회가 중심이 된 ‘전국아동·보육학계연대’는 지난 22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앞에서 ‘사회서비스공단 내 보육직렬 편입계획안 전면 반대’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전날에는 51개 단체가 소속된 ‘유아교육·보육혁신연대’가 사회서비스공단 추진 반대를 담은 서명지를 국정기획위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음달 8일 독자적인 토론회를 열어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길거리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국공립 어린이집과 요양기관 #공단이 직접 운영해 질 높일 계획 #민간 어린이집 “생존 우려 커져” #전문가 “민간과 병행 발전안 필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은 보육과 어르신 돌봄 등의 질을 높이고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다. 공약에 따르면 광역 지자체별로 공단이 설립돼 국공립어린이집과 요양기관을 직접 운영하게 된다. 또 이들 기관에 소속된 요양보호사와 보육교사를 공단이 직접 고용한다. 이와 함께 보육과 요양, 장애인 지원 등을 위한 국공립시설의 추가 설립도 추진하게 된다.

사실 사회서비스공단의 뼈대는 이야기만 무성할 뿐 아직 안갯속이다. “국정기획위와 관계부처 간 협의가 계속 진행 중이며 세부적인 내용은 전혀 확정된 게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런데도 보육계가 벌써 결사반대를 외치는 이유는 뭘까.

표면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유·보(유아교육·보육) 통합’이다. 서영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20년 가까이 유·보 통합 논의가 진행되면서 많은 부분에서 진전이 있었는데, 공단이 보육을 흡수해 버리면 ‘어린이집은 보육, 유치원은 교육’이란 이분법적 구분이 고착화된다”며 “민간 보육교사의 전반적인 처우 향상과 전인적인 아동교육 등도 물 건너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간어린이집 원장들은 학부모가 선호하는 국공립시설이 매년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단까지 설립되면 민간·가정어린이집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고 생존권을 걱정하고 있다. 장진환 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은 “근무여건이 좋은 공단 소속 어린이집으로 보육교사가 쏠리면 민간시설에선 인력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공립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공단에 편입되면 급여 인상과 고용 안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반해 민간 소속 보육교사들은 가뜩이나 국공립에 비해 뒤떨어져 있는 임금 등 근무여건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2015년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국공립 보육교사의 평균 월급은 210만원이었지만 민간은 163만원, 가정은 150만원에 그쳤다. 김명자 전국보육교사연합회 대표는 “단순히 보면 처우 개선이란 장점 때문에 공단 설립이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일부에게 혜택을 주기보단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보육교사들을 위한 대책을 고민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공립시설과 인력을 늘리는 데 그치지 말고 민간 영역의 질을 같이 끌어올려야 공단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영세 민간시설을 정리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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