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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화장장 모자라 ‘시신호텔’서 대기…장례 비용은 10분의 1 수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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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운영 중인 시신호텔 '소소'의 내부 모습. [사진 소소 홈페이지]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운영 중인 시신호텔 '소소'의 내부 모습. [사진 소소 홈페이지]

“죽어서도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신세다.”
일본에서 만성적인 화장시설 부족으로 장례 문화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길게는 열흘 정도 기다려야 화장할 수 있는 상황이 속출하면서 그사이 ‘대기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이른바 ‘시신호텔(遺体ホテル)’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전했다.

조화 등 최소한 장의물품 제공…운구까지 맡아 #日 장례비 평균 약 2000만원…시신호텔은 200만원 #'多死사회' 사망자 수 급증, 2040년 166만명 추산 #"인구 1300만 도쿄에 화장장은 20곳도 안 돼" #화장장 지역 편차도…혐오시설 반대 불구 성황 #사라지는 장례문화…장례 없이 화장장 직행 급증 #10여년 새 배 이상 늘어난 독거노인 고독사 등도 부채질 #

호텔 서비스는 단출하다.
조화·수의·관·유골함 등 장례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과 유가족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또 시신을 병원에서 옮겨와 화장장까지 운구하는 일도 맡는다.
대신 장례 비용은 저렴하다.
일본소비자연맹이 산출한 일반적인 장례식 평균 비용은 196만 엔(약 1996만원)에 이른다.
반면 오사카(大阪)의 시신호텔인 ‘호텔 릴레이션’의 기본 장례 패키지 가격은 18만5000엔(약 189만원)으로 대략 10분의 1 수준이다.

시신호텔이 각광받게 된 배경에는 일본사회의 고령화가 자리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일본의 또 다른 이름은 ‘다사(多死)사회’다.

해마다 고령 사망자가 늘고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 2005년 사망자가 출생아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2007년 이후로는 연간 사망자 수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전후 베이비부머인 ‘단카이((團塊) 세대(1947~49년생)’가 모두 90대가 되는 2040년쯤 연간 사망자가 166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가고시마(鹿児島)현 인구(약 170만 명)와 맞먹는 규모다.

박춘환 기자 pchoonhwan@joongang.co.kr

박춘환 기자 pchoonhwan@joongang.co.kr

사정이 이런 데도 화장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의 상황이 더 심각하다.
NYT는 “1300만 명이 사는 거대 도시 도쿄(東京)의 화장장은 20곳도 안 된다”고 전했다.
게다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주민 반대가 심해 신규 화장장을 짓기도 여의치 않다.

화장시설의 지역 편차는 시신호텔이 나온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에 따르면 도쿄에서 가까운 가와사키(川崎)시의 인구는 150만 명, 그러나 화장장은 2곳뿐이다.
인구가 비슷한 에히메(愛媛)현에서는 38곳의 화장장이 운영 중이다.
3년 전 가와사키시에 시신호텔 ‘소소’가 들어설 당시만 해도 지역 주민의 반대가 거셌다.
화장시설과 마찬가지로 시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호텔 앞에는 “시신 보관소, 절대 반대”라는 현수막까지 내걸렸다.
그러나 지역 내 이용자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혐오시설로 보는 시각은 상당히 줄어든 모습이다.
오히려 입소문을 타면서 도쿄 등 주변 지역에서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일본 장의사가 시신이 든 관을 운구차로 옮기고 있다. [사진 지지통신]

일본 장의사가 시신이 든 관을 운구차로 옮기고 있다. [사진 지지통신]

도시화와 핵가족화에 따라 점차 간소화되는 장례 분위기 역시 시신호텔 사업의성장 요인이 된다.
예전처럼 많은 지인이 모여 고인을 추모하는 장례 문화가 사라지는 대신 가족 단위 장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장례식 없이 곧바로 화장장으로 향하는 경우(쵸크소:直葬)도 급증세다.
다이이치생명보험연구소에 따르면 장례식을 아예 안 치르는 경우가 30%로 10년 전에 비해 10%포인트 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쵸크소 마저도 ‘사후 24시간 이내에는 화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일본 법규 때문에 화장 전까지 일정한 대기시간을 갖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자택에 시신을 안치하기에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대도시 고층 맨션(일본식 아파트) 중에는 관리규정 상 시신 반입 자체가 되지 않는 곳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이 틈을 이용한 사업이 시신호텔이라고 닛케이비즈니스는 평가했다.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늘어나는 세태도 무관치 않다.
2015년 도쿄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고독사한 사례는 2003년의 배를 넘는다.
고령이 되면서 공동체와 떨어져 홀로 살다가 사망 후엔 장례 절차 없이 시신호텔을 이용하게 되는 풍경이 일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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