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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파트 화재는 확인된 인재…구청 16차례 안전검점 했으나 허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소 79명을 숨지게 한 영국 런던 24층 임대아파트 화재 참사의 원인이 허술한 당국의 안전 관리 때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아파트가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구청 측이 16차례나 안전점검을 했지만, 고층 건물에 사용이 금지된 가연성 외장재를 그대로 방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연성 폴리에틸렌 외장재 사용에 아무런 제재 없어 #18m 이상 고층 건물에 사용 못하는 소재로 드러나 #당국이 피해자 가족에 제공할 새 아파트 68채 매입했으나 #일부 기존 주민들은 "집 값 떨어질라" 반대하기도

 불이 난 그렌펠 타워를 관리하는 캔싱턴첼시왕립자치구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리모델링이 진행된 해당 아파트에 대한 안전점검을 진행했다. 2014년 8월 29일 첫 검사가 실시됐고, 지난해 7월 7일 마지막으로 검사한 뒤 안전검사를 완료했다는 증명서까지 발급했다. 하지만 검사 과정에서 건물 외벽에 붙인 외장재에 불에 잘 타는 폴리에틸렌 합성수지가 충전재로 사용된 것을 막지 않았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화재가 난 24층 런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AFP]

화재가 난 24층 런던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 [AFP]

 폴리에틸렌 합성수지는 단열 효과가 높아 알루미늄 패널에 덧붙이는 충전재로 쓰이지만,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지기 때문에 18m 이상 고층 건물에는 사용할 수 없도록 영국 정부가 규제하고 있다.
 특히 한 리모델링 업체가 그렌펠 타워 외벽에 부착할 외장재로 난연성 소재의 제품을 제안했으나 구청 측이 최종적으로 불에 잘 타는 폴리에틸렌 소재를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구청 측 관계자들이 실제 현장에 나가 안전점검을 했는지와 불에 잘 타는 불법 소재를 24층 건물에 사용하도록 방치한 과정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구청 단속요원들의 검사 역량, 건물 계약 과정의 부적절성, 관리 당국의 은폐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그렌펠 타워 주민들을 대변하고 있는 노동당 소속 구의원 주디스 블레이크먼은 “구청 직원들에게 충분한 역량이 있었는지, 그들이 무엇을 확인했는지 의문"이라며 “공사 과정에서 은폐된 것은 없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폴리에틸렌 충전재가 타면서 발생한 독성 가스가 사망자를 늘린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인디펜던트는 한 병원에서 치료 중인 부상자 중 최소 3명이 해당 충전재가 타면서 발생한 독성 가스를 해독하는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다른 병원들은 해당 치료를 했는지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폴리에틸렌 합성수지가 포함된 제품은 싼 가격에 건물 내·외부 단열 효과를 높일 수 있어 국내에서도 사용된다. 하지만 쉽게 불에 타고 유독 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화재 발생시 치명적인 것으로 경고돼 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개원한 의회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중앙과 지방 차원에서 국가가 돕는데 실패했다”며 “총리로서 사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총리 집무실과 의회 주변에서는 메이의 사퇴 요구 시위가 계속됐다.

 영국 정부는 생존자 가족의 새 거주지로 그렌펠 타워 인근에 건설 중인 고급 아파트 68채를 사들여 제공키로 했다. 최저 분양가가 20억원이 넘는 곳인데, 건설업체 측이 가격을 낮춰주는 조건으로 매입했다. 다음달 공사가 끝나면 새 아파트를 피해 가족에게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정부가 화재 참사의 생존자들에게 새 거주지로 제공할 예정인 고급 아파트. [영국 인디펜던트]

영국 정부가 화재 참사의 생존자들에게 새 거주지로 제공할 예정인 고급 아파트. [영국 인디펜던트]

 이 아파트는 일반 분양되는 초호화 주택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건설되고 있으며, 내장재도 평범한 수준일 것이라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하지만 고가 아파트 지역의 일부 주민들은 “매달 5000파운드(약 720만원) 이상을 내고 있는데, 사정이 딱하긴 하지만 화재 이주민들이 제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편의시설 등을 이용할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거나 “집 값이 떨어질 것 같다"며 반대하고 있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한편 정확한 실종자 규모와 화재 원인은 아직도 규명되지 않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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