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자 '셀프 훈장' 논란 사실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자의 1차 연평해전 ‘셀프 훈장’ 논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송 후보자가 1999년 1차 연평해전을 치를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김진호(학군 2기) 예비역 대장이다. 김 전 의장은 21일 보내온 문자 메시지를 통해 “ 1차 연평해전에 참여한 해군 작전사령관을 포함한 제독(장군)에 대한 상훈은 합동참모본부에서 결정했는데 당시 송 단장의 상훈도 합참이 최종 결정했다”며 “송 단장 스스로 자신의 훈장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송 후보자 연평해전 훈장 합참에서 결정 #당시 김진호 합참의장이 훈장수여 의결해

지난 1999년 6월 15일 김진호 당시 합참의장(왼쪽)과 존H 틸러리 연합사령관은 국방부내 합참회의실에서 한미군사위원회를 열었다. 한미 양국이 연평해전 해결을 위한 군사공조체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진 중앙포토]

지난 1999년 6월15일 김진호 당시합참의장(왼쪽)과 존H 틸러리 연합사령관은 국방부내 합참회의실에서 한미군사위원회를 열었다.한미 양국이 연평해전 해결을 위한군사공조체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진 중앙포토]

제1차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에 서해 연평도 부근 해상에서 일어난 남ㆍ북 해군간 첫 정규균 교전이었다. 당시 북한 해군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북방한계선(NLL)을 2 km 침범했다. 해군 2함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고속정 등을 투입했다. 2함대는 2전단 소속의 고속정 뱃머리로 북한 경비정을 들이받았다. 이에 북한 함정에서 먼저 발포하면서 순식간에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 결과는 북한군 경비정 1척 이 침몰하고 5척이 파손하면서 북한 해군 50여 명의 사상자(전사 20, 부상 30여 명)가 발생한 해군 2함대의 대승이었다. 송 후보자는 당시 현역 해군 준장으로 2함대의 주력 전투부대인 2전단의 전단장으로 지휘관인 2함대사령관을 보좌하면서 기여했다. 그때 현장 작전을 총 지휘한 2함대사령관은 박정성(해사 25기) 소장이었는데 북한의 도발을 대비해 해상에서 스티로폼을 띄워놓고 2전단의 고속정으로 들이받는 훈련을 40여 일동안 미리 준비했었다.

지난 2007년 서해교전 5주기 추모행사에서 송영무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전사자들에 대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지난 2007년 서해교전 5주기 추모행사에서 송영무 당시 해군참모총장이 전사자들에 대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이 전투의 공훈과 관련, 한국당 김학용 의원은 지난 20일 “송 후보자는 훈장을 받았던 1999년 당시 연평해전 승리의 공적을 판단하는 공적심사위원장을 맡았다”며 “심사위원이 자신을 심사해 사실상 셀프 훈장을 받은 것”이라고 의문을 내놨다. 이에 대해 송 후보자 측은 자신이 지휘한 2전단의 공적심의위원장으로서 예하 부대 장병들의 공적만 심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투와 관련된  하급부대 장병과 지휘관의 공적심사는 전단장이 하며, 장성에 대해선 함대사령부 등 현지 사령부가 공적서를 작성하고 작전을 총괄하는 합참의 의결을 거쳐 국방부로 보내진다.

김 전 의장은 “당시 작전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며 “일촉즉발의 숨막혔던 상황을 승리로 이끌었던 우리 군의 공적과 군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말라”고 덧붙였다.

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kimse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