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 학회' 대표 박희진 교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어려워 하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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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결성된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 회원들이 한두편씩 나누어 번역한 버지니아 울프 단편 전집 1권 '불가사의한 V양 사건'(솔)이 출간됐다. 조만간 2권이 나올 버지니아 울프 단편 전집은 장편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했던 울프의 주옥같은 단편들이 믿을 만한 번역자들에 의해 소개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 학회는 울프를 전공한 교수.연구자들의 모임으로 '불가사의한…'은 학회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학회의 대표직을 맡고 있는 영문학자 박희진(67.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사진)씨는 "피카소 하면 추상화만 떠올리다가 그의 구상화를 접하고는 놀라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들은 피카소의 구상화 같은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단편집 출간의 의의를 밝혔다.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소설 속에 '의식의 흐름' 기법을 도입한 모더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로만 기억되는데, '공작부인과 보석상' 같은 전통적인 기법으로 씌여진 소설에서는 울프가 사사했던 모파상이나 체홉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박씨는 "때문에 난해한 장편과 달리 울프의 단편 중에는 쉽고 재미있으면서 격조있는 작품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책 앞부분에는 전통적 수법의 작품들을 배치하고 뒤로 갈수록 실험적인 경향의 작품을 싣는 방식으로 책을 편집했다. '불가사의한…'에는 결혼생활이 결국 족쇄임을 확인하는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라뺑과 라삐노바' 등 23편이 실렸다.

'불가사의한…'은 출판사가 1995년부터 출간해온 울프 전집 중 한권이다. 박씨는 "울프의 페미니즘은 실존주의, 근원적인 외로움, 죽음에 대한 명상 등이 녹아 있는 여백이 풍부한 것"이라며 "어렵지만 읽다보면 고귀한 기쁨, 격조 높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점이 울프의 매력"이라고 소개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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