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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자칫 감옥이나 골방에 갇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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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한선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박한선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지난 5월 30일 개정 정신보건법, 이른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여러 조항이 대폭 개정되었지만 핵심은 이렇다. 입원, 특히 비자발적 입원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고, 일단 입원한 후에도 오랫동안 머무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신과 전문의 2인의 소견이나,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사 등을 강제했다. 전보다 입원 기간도 줄였다. 자·타해의 위험이 분명하지 않으면 정신 증상이 있어도 동의 입원이 불가능하도록 했다.

시장에 정신장애인 관리 맡긴 #정신보건법 바람직해 보이나 #민간이 맡았던 정책 사각지대 #국가 차원 대책 빨리 나와야

법 조문만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정신과 전문의 2인이 같이 평가하고, 외부의 독립된 위원회의 심사도 거친다면 동의 입원의 공신력도 높아질 것이다. 무작정 늘어지는 입원 기간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도 정신과 의사들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가 현 개정법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왜 ‘바람직한’ 방향의 개정 정신보건법에 반대하는 것일까?

이러한 논란의 핵심은 정신장애인 관리를 자유시장 원리에 내맡긴 데에서 시작한다. 한국 정신병원은 대부분 사립이다. 사립정신의료기관이 1384개, 공공정신병원이 18개다. 국공립병원의 정신병상 수는 고작 전체의 9%에 불과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낮은 수준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정신장애인의 관리를 지금까지 민간에서 담당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민간 병원은 소위 입원 장사를 한다는 억울한 비난도 감당해야 했다. 처음부터 국가가 직접 맡았어야 하는 일이었다.

호주는 정신보건의 선진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호주의 정신장애인들은 대규모 정신병원에 장기간 수용되어 지냈다. 인권침해나 노동력 착취 문제도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 무렵 환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내는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면 기존 정신병원들은 도산하고, 직원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대형 정신병원의 의료진은 모두 공무원이었다. 오지의 정신병원에서 도시의 복귀 시설 등으로 ‘재배치’되었을 뿐이다. 오히려 이들은 탈수용화 정책을 환영했다.

캔버라의 한 종합병원 정신병동은 50여 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는데, 평균 입원 기간은 일주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무려 18개월 넘게 입원하고 있는 난치성 환자도 두 명이 있다. 치료 기간은 오롯이 환자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정은 아주 다르다. 단기 입원도, 장기 입원도 어렵다. 병상가동률과 병상회전율을 동시에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입원을 오래하면 ‘국가에서’ 무조건 입원 수가를 깎는다. 짧으면 늘리고 길면 자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따로 없다.

우리 사회는 정신장애인에게 절대 돈을 ‘낭비’하지 않는다. 당장 많은 환자가 병원을 나와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취직할 곳도, 공부할 곳도, 여가를 즐길 곳도 없다. 이들을 위한 사회복귀시설이나 재활시설에는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터나 배회할 수 있을까? 결국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저 아저씨 곁에는 가지 말라’고 하는 이웃의 냉대와 혐오뿐이다.

갈 곳 없는 환자에 대한 모든 부담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돌아간다. 재입원도 장기입원도 어려워진 상황에 가족들은 몇 달마다 환자를 데리고 ‘입원을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한다. 아니면 이웃의 눈초리를 피하려 집안에 꽁꽁 감추어 두어야 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부족한 공공 정신병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사택감치(私宅監置)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가족이 관청의 허가를 받아 집 안에 ‘감치실’을 만들어 가두는 것이다. 준비 없는 탈수용화는 사실상 환자를 좁은 집 안에 ‘사택감치’ 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돌봐줄 가족마저 없는 환자들은 길거리를 배회할 수밖에 없다. 이러저러한 경범죄를 저지르며 전과가 쌓이고, 결국은 교도소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너무 비관적인 전망일까? 호주와 달리 미국의 탈수용화 정책은 의료비를 줄이려는 목적이 강했다. 그런데 탈수용화를 시작하면서 줄어든 입원 환자만큼 교도소 수감자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일부 학자는 이를 들어 탈수용화(deinstitutionalization)가 아니라 횡수용화(transinstitutionalization)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심지어 미국에서 중증 정신장애인을 가장 많이 관리하는 곳은 보건부가 아니라 법무부라는 농담도 있다.

개정 정신보건법이 성공하려면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예산과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 그동안 민간에서 떠맡던 역할까지 공공의 영역으로 되찾아야 한다. 또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서도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치매만 국가에서 책임질 것이 아니다. 정신장애인도 국가에서 책임지고 지원, 관리해야만 한다. 가족의 희생이나 의료인의 선의에만 맡기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변했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