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북한, 도발 중단하고 대화의 문을 열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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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건장한 몸으로 북한에 들어갔다가 식물인간이 돼 돌아온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으로 미국이 들끓고 있다. 미 하원은 북한인권법 5년 연장을 즉각 의결했고, 언론은 북한 여행 금지 등 강력한 대북 압박을 요구 중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와 남북 철도 연결 운운하자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달 말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엇박자를 낼 수 있고, 제재 국면의 국제사회에 그릇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황이 아무리 암담해도 이에 좌절하지 않고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을 잡아 문제 해결에 나서려는 새 정부의 의지만큼은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문 대통령은 그제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 도발을 중단한다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 대화를 재개하고 궁극적으론 북핵 폐기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구상을 밝혔다. 이어 어제는 제주에서 열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연차총회 개막식에 참석해 “남북이 철도로 연결될 때 새로운 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완성이 이뤄진다”며 남북관계 복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대화 재개 제안은 ‘북핵 폐기에 진정성을 보여야 대화에 나선다’던 박근혜 정부에 비해 그 문턱을 크게 낮춘 것이다. 북핵 해법의 ‘입구’를 넓히자는 의도로 읽힌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한반도 전쟁은 심각한 고통인 만큼 외교적 해법이 우선”이라고 말한 것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 쌍중단(북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말하는 중국 입장도 일정 부분 반영한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간 셈이다. ‘참수작전’이 두려워 전용차도 못 타고 주로 새벽에 활동한다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핵·미사일 실험을 즉각 중단하고 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우리 측의 인도적 지원 제안도 즉각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물이 흐르다 보면 도랑이 생기는 법이다. 대화가 많아지다 보면 복잡한 한반도 문제의 해법 또한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