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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청 이기려 땀 흘리다가 ‘머슬 퀸’ 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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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4세의 나이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던 이연화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운동으로 이겨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몸을 만든 결과 지난 4월 머슬마니아에서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줌인스포츠 강명호]

24세의 나이에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던 이연화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운동으로 이겨냈다. 피나는 노력 끝에 몸을 만든 결과 지난 4월 머슬마니아에서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줌인스포츠 강명호]

그녀의 눈앞엔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전도유망한 젊은 디자이너로서 각종 공모전을 휩쓸었다. 그러나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가 그녀를 덮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정작 그는 자신의 삶은 디자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머슬마니아’ 우승 26세 이연화 #공모전 휩쓸며 잘나가던 디자이너 #과로 탓 2년 전 갑자기 잘 안 들려 #스트레스로 몸무게 15㎏ 늘기도 #“잔근육 하나하나 몸은 거짓말 안 해 #운동 결합한 패션 디자인 하고파”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는 그에겐 청천벽력이라 다름없었다. 대인기피증에 걸려 한동안 바깥 출입을 삼간 채 방안에 틀어박혔다. 스트레스 탓에 폭식을 한 나머지 몸무게가 갑자기 15㎏나 늘었다. 그에게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생겼다. 바로 운동을 통해 삶의 희망을 찾은 것이다. 지난 4월 ‘머슬 퀸’에 뽑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디자이너 이연화(26)의 이야기다.

이연화가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연화가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김경록 기자]

이연화는 지난 4월 열린 ‘2017 머슬마니아 오리엔트 챔피언십’ 패션모델 여자 부문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연화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후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머슬 퀸에 뽑힌 이후 이연화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연화는 “프로가 아니여서 포즈와 워킹이 어색했다.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입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이연화]

이연화는 “프로가 아니여서 포즈와 워킹이 어색했다.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셔서 입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이연화]

최근 서울 한남동의 커피숍에서 이연화를 만나 왜 그렇게 몸 만들기에 열중하는지 물어봤다. 청력이 약한 그는 기자의 입모양을 보며 소리를 읽어냈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무리한 일과가 내 몸에 독이 될 줄은 미처 몰랐어요.” 이연화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발음이 어눌했고, 말을 가끔 더듬었다.

경희대에서 예술학·산업디자인학을 전공한 이연화는 4년 내내 단과대 수석을 했다. 여학생 최초로 단과대학 학생회장도 맡았다. 2013년엔 디자이너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톱5에 들었다. 유명세를 타자 대기업들이 그에게 디자인 프로젝트를 잇따라 제안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을 하다가 바닥에서 쓰러져 잠드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 2015년 봄, 오른쪽 귀가 점점 안 들리기 시작하더니 귀를 막아도 계속해서 ‘삐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 이연화는 소셜미디어에 “오른쪽 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썼다.

이연화는 대학 시절부터 공모전을 휩쓸며 잘나가는 디자이너였다. 2013년 디자이너 서바이벌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톱5에 들었다. [사진 이연화]

이연화는 대학 시절부터 공모전을 휩쓸며 잘나가는 디자이너였다.2013년 디자이너 서바이벌 TV프로그램에 출연해 톱5에 들었다. [사진 이연화]

병원에서는 돌발성 난청·이명·이관개방증이 겹쳤다며 청각장애 판정을 내렸다. 이관개방증은 코와 귀를 연결하는 이관이 지속적으로 열리는 증상으로 심한 경우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린다. 이연화는 “오른쪽 귀에 모기 한 마리가 살고 있는 것처럼 하루종일 윙윙 소리가 들렸다”고 털어놨다.

이연화는 우연히 일본에 저명한 의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이연화는 “청신경이 70%나 죽었지만 다행히 30%는 돌아왔다. 주기적으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연화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매트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귀에 무리가 가는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력 운동 등 무산소 운동에 집중했다. [줌인스포츠 강명호]

이연화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매트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귀에 무리가 가는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력 운동 등 무산소 운동에 집중했다. [줌인스포츠 강명호]

시각과 청각을 잃었던 헬렌 켈러(미국)는 “시각장애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은 있지만 비전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이연화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귀에 무리가 가는 유산소 운동보다는 근력 운동 등 무산소 운동에 집중했다. 몸을 만들기 위해 양고기 등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더라도 매일 조금씩 네 번에 걸쳐 나눠 먹었다.

이연화는 “아프고 난 뒤 내 몸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귀울림이 심해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니 잠을 잘 수 있었다. 몸이 좋아지면서 저절로 자신감이 생겼다. 몸도 마음도 아름다워야 삶이 굴곡없이 흘러간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연화는 운동을 통해 더 주체적이며 도전적인 일을 시작했다. 그는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줌인스포츠 강명호]

이연화는 운동을 통해 더 주체적이며 도전적인 일을 시작했다. 그는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줌인스포츠 강명호]

운동은 그의 삶을 바꿨다. 이연화는 현재 화보와 브랜드의 콘셉트를 기획하는 로터스그룹 대표이자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모델 아카데미에서 패션트렌드 강의도 하고 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던 그는 요즘 활발하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그는 “청각장애 때문에 말이 어눌해요. 이해해 주세요”라면서 먼저 웃으며 다가선다. 길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6만6300명으로 늘었다.

이연화는 "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다. 미국 모델 카일리 제너(20)처럼 몸과 패션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애슬레틱 패션 아이콘이 되고 싶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김경록 기자] 

이연화는 "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다. 미국 모델 카일리 제너(20)처럼 몸과 패션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애슬레틱 패션 아이콘이 되고 싶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김경록 기자]

 이연화는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 작은 근육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 한다”며 “몸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패션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 이연화는 어눌한 말투로 자신의 좌우명인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을 들려줬다. ‘인생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이연화는 …


출생 : 1991년 10월 6일 서울 출생
체격 : 키 1m74cm, 몸무게 51㎏
학력 : 경희대 예술학과·산업디자인학과 졸업
직업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디자이너)·모델·강사
장애 : 이관개방증, 이명, 돌발성 난청
수상 : 2017 머슬마니아 오리엔트 챔피언십 패션모델 부문 그랑프리
좌우명 : 인생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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