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데자뷔…야당과 충돌할 때 대통령이 꺼내는 ‘국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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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뜻에 따르겠다.”
“국민을 위해 받아들이기 어렵다.”

앞의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말이다. 뒤의 발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3년 3월 4일 첫 대국민 담화를 하면서 한 말이다. ‘국민’을 강조한 전ㆍ현직 대통령의 발언은 임기 초기 야당과 갈등할 때 나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시도지사간단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시도지사간단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 문제를 놓고 야당과 대치 중이다. 자유한국당ㆍ국민의당ㆍ바른정당 등 야 3당은 강 후보자가 “부적격”이라고 공동 전선을 펴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15일 회의를 시작하면서 “강경화 후보자는 제가 보기에 당차고 멋있는 여성”이라며 “유엔과 국제사회에서 외교관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칭송받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뒤 “흔히 쓰는 표현으로 글로벌한 인물”이라며 “우리도 글로벌한 외교부장관을 가질 때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한 근거로 ‘국민’을 거론했다. “(강 후보자에 대해) 국민들도 지지가 훨씬 높다”며 “야당도 국민의 판단을 존중하여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강 후보자 임명은 문 대통령 자신의 뜻이 아닌 국민의 뜻이라는 논지다.

박 전 대통령의 2013년 3월 담화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당시 야당이던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막혀 있던 상황에서 나왔다. 전날에는 김종훈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하기도 했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담화에서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들을 대신하는 의무를 부여받은 것이지 국민들의 권리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며 야당이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고는 “하루 빨리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도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 모두 임기 초기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정국이 막혀 있는 데 대한 심경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이 마치 허공을 휘젓는 손짓처럼 허망일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산적한 현안과 국민의 삶을 챙겨야 할 이 시기에 참으로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 앞에 섰다”고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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