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재협상’ 속내 들켰나 ­… 정현백 발표 두번 한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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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개 부처 장관 후보자가 발표된 13일 청와대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브리핑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협상’이란 문구를 썼다가 50분 만에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처음엔 “한·일 재협상 등 해결 기대” #기존 정부 입장과는 결이 다른 내용 #50분 뒤 해당 내용 빼고 다시 발표 #청와대 “오해 살수 있는 표현, 실수”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오후 2시15분 정 후보자에 대해 “여성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 긴급한 현안도 차질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관 인사 브리핑’이란 제목의 보도자료에도 해당 문구가 있었다. 이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한 듯한 발언으로 재협상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았던 기존 정부의 입장과는 결이 다른 내용이었다.

박 대변인은 ‘사실상 위안부 합의 재협상에 방점을 두고 말한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재협상은 한·일 간 여러 정치적 상황에 따라 진행될 문제다. 그런 바탕이 깔려 있다는 설명으로 이해해 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재협상을 주장했으나 취임 후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두 차례 통화에서는 물론이고 특사들이 양국 정상을 접견하는 과정에서도 재협상이나 합의 파기라는 단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수차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양국이 지혜를 모아 개선하길 희망한다”고만 했었다.

여성부가 위안부 관련 사업을 한다곤 하나 합의의 주무부처는 외교부다. 청와대의 발표 이후 외교부 당국자들은 당혹해했다.

결국 청와대는 오후 2시57분 권혁기 춘추관장을 통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설명 중 마지막 줄을 삭제하고 다시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공지했다. 3분 뒤 박 대변인이 마이크를 잡고 ‘위안부 합의 재협상’ 대목을 뺀 채 지명 사실을 다시 발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실수”라며 “(발표문이) 재협상을 기정사실화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수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발표문은 인사 부서에서 내려온다”며 “(재협상이 대선후보 시절) 공약했던 사항이라고 해도 현재로서 그 문제를 그렇게 확정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고, 그 지적이 옳다고 인정한다”고 했다.

여권 지도부에선 그러나 공공연하게 재협상 주장이 나온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정부에서 독선적이고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며 “재협상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도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만큼 실제 재협상 속내를 무심코 드러낸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이와 관련, “정부 초기라 실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사안의 파급력을 생각할 때 정부 차원에서 일관되고 종합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통령도 재협상이란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만큼 그에 맞춰 메시지 관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지혜·위문희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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