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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묶은 ‘듀란튤라’ NBA 왕별로 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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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듀란트의 별명은 ‘듀란튤라’(듀란트+타란튤라 거미)다. 큰 키(2m6㎝)에다 긴 윙스팬(양팔을 벌렸을 때 길이·2m29㎝) 덕분에 이런 별명을 얻었다. [오클랜드 AP=뉴시스]

듀란트의 별명은 ‘듀란튤라’(듀란트+타란튤라 거미)다. 큰 키(2m6㎝)에다 긴 윙스팬(양팔을 벌렸을 때 길이·2m29㎝) 덕분에 이런 별명을 얻었다. [오클랜드 AP=뉴시스]

케빈 듀란트(29·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변절자’다. 적어도 미국프로농구(NBA)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팬들에겐 그랬다. 듀란트가 지난해 7월 오클라호마시티를 떠나 서부컨퍼런스 경쟁팀인 골든스테이트로 옮기자 팬들은 그를 ‘반지 추종자(ring chaser)’ 또는 ‘변절자(sellout)’로 불렀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단짝이었던 러셀 웨스트브룩은 아예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나 듀란트에겐 그만큼 우승이 절실했다.

골든스테이트 파이널 5번째 우승 주역 #만년 2인자 한 풀려고 작년 이적 #“우승 반지 위해 고향 버린 변절자” #선더 팬들 야유 딛고 MVP 등극 #시리즈 내내 부딪혔던 제임스 #경기 끝나자 달려가 끌어안아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오라클 아레나에서 열린 골든스테이트 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NBA 파이널 5차전. 듀란트는 시종일관 코트를 휘저으며 39점·5어시스트·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눈부시다’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의 맹활약. 듀란트가 가세한 골든스테이트는 129-120으로 승리하면서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역대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평균 35.2점, 8.4리바운드 를 기록한 듀란트는 파이널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골든스테이트는 지난해 클리블랜드를 만나 3승1패로 리드하다 잇따라 세 판을 내주고 우승 목전에서 물러났던 아픈 경험이 있었다. 지난해 정규시즌에서 73승9패(승률 0.890)로 NBA 역대 최고 승률을 기록하고도 클리블랜드의 르브론 제임스(33·2m3㎝)의 벽을 넘지 못했다.

NBA 파이널 MVP에 선정된 뒤 트로피를 왼손에 들고 웃고 있는 듀란트. [오클랜드 AP=뉴시스]

NBA 파이널 MVP에 선정된 뒤 트로피를 왼손에 들고 웃고 있는 듀란트. [오클랜드 AP=뉴시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듀란트가 가세한 골든스테이트는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를 압도했다. 듀란트는 누구보다도 우승 반지가 절실했다. 듀란트는 2007~08시즌 신인왕, 2013~14시즌 정규시즌 MVP에 오르는 등 NBA의 최고 스타로 군림했지만 정작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챔피언 반지를 얻기 위해 골든스테이트 유니폼을 입었지만 듀란트는 정작 이번 시즌 내내 힘겨운 싸움을 펼쳤다. 3월에는 왼쪽 무릎 인대를 다치면서 약 40일 동안 코트를 떠나야 했다. 그럼에도 듀란트는 ‘만년 2인자’라는 오명을 떨쳐내기 위해 코트에 돌아와 꿋꿋이 버텼다.

듀란트는 2007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전체 2순위로 선발됐다. 정규시즌 MVP 투표에서도 세 차례나 2등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듀란트는 항상 ‘넘버1’ 제임스와 비교됐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뛰던 2011-12시즌 파이널에선 제임스가 이끌던 마이애미에 1승4패로 진 뒤 어머니를 안고 통곡했다. 그래서 듀란트는 제임스처럼 팀을 옮겨서라도 ‘넘버1’의 자리에 오르고 싶었다. 제임스 역시 2010년 고향팀 클리블랜드를 버리고 마이애미로 떠났다가 한동안 ‘배신자’로 불렸다.

르브론 제임스

르브론 제임스

제임스와 듀란트는 이번 파이널 시리즈 내내 신경전을 펼쳤다. 그렇지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골든스테이트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듀란트는 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 대신 제임스를 먼저 찾았다. 그리고 그를 꼭 껴안았다.

제임스는 “지난해에는 우리가 이겼지만 듀란트가 가세한 골든스테이트는 무척 강했다. 앞으로 그들과 맞설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제임스는 파이널 5경기에서 평균 33.6점·12리바운드·1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NBA 파이널 역사상 시리즈 평균 트리플더블은 제임스가 최초다. 듀란트는 “2012년부터 제임스만 바라보며 농구를 했다. 한 번씩 우승을 주고받았으니 또 다시 파이널에서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두 시즌 동안 골든스테이트를 이끌었던 간판 슈터 스테판 커리(29·1m91㎝)는 이번 시리즈에서도 평균 26.8득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하지만 올해는 해결사로 나서는 대신 묵묵히 듀란트의 도우미 역할을 맡았다. 골든스테이트는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기까지 단 1패(16승)만 당했다. 파이널 3차전까지 15연승을 거두며 미국 프로스포츠 플레이오프 사상 최다연승 기록도 새로 썼다.

3시즌 연속 파이널에 올라 두 차례 우승한 골든스테이트는 1990년대 마이클 조던(은퇴)이 뛰던 시카고 불스에 버금가는 왕조 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 시즌을 마친 뒤 커리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지만 잔류가 확실해 보인다. 듀란트 역시 FA 권리를 행사할 수 있지만 팀을 떠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황금 전사’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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