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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수·음모의 장으로 묘사|소설속의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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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권력은 인간의 지배욕과 조직의 지배관계를 드러내주는 부정형의 실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문학, 특히 소설행위의 매력적인 테마로 다루어져왔다. 특히 선거는 한 개인이·권력을 자신의 소유로 획득하는 공인형식인 동시에 한 사회가 그 창출된 권력을 통해 스스로의 질서와 구조를 개편하는 공인형식이라는 점에서 소설의 소재로 많이 등장해왔다. 그렇다면 우리문학속에 나타난 선거는 어떤 모습을 띠고있을까. 열흘남짓 남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소설속에 비친 선거」를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소설속의 선거는 우선 부도덕함과 추악함이 가득찬 난투장으로 묘사되고 있다. 서동훈씨의 장편 『해를 먹는 부엉이』는 자유당말기 어느 시골마을을 무대로한 여당국회의원후보자가 자신의 권력욕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하는 각종 술수와 음모를 파헤친 소설이다.
정치폭력배동원, 상대 후보자선거방해공작, 금품살포, 흑색선전, 선거자금유용등 부정사례가 질펀하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선거가 어디까지 부패할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소설속의 부정선거는 대부분 집권연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재정권과 결탁해 나타난다.
현길출씨의 단편 『우리들의 스승님』은 3·15선거를 앞두고 이승만박사를 당선시키기 위해 각급 학교에 이박사를 위한 헌사를 짓도록 강요하는 송덕진장학관이 등장하고, 현기영씨의 단편 『겨우살이』는 유신헌법찬반투표직전 30명의 학부모들에게 도장을 받아오라는 교장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어느 중등교사를 통해 무기력한 지식인의 고뇌를 다루고 있다.
그런가하면 조성기씨의 중편 『라하트 하헤렙』에는 유신헌법에 대한 찬성만을 강요당하는 사병들의 부재자투표장면(단행본출간시 삭제됨)을 담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들 소설이 「형식으로서의 선거」가 부도덕할 경우 「내용으로서의 권력」또한 부도덕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면 최일남씨의 중편 『숙부는 늑대』나 이제하씨의 단편 『초식』등은 선거를 통해 개인의 내면과 삶의 방식을 파헤친 작품들이다.
일제말기부터 4·19에 이르기까지 부패한 정치를 개탄하며 끊임없이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나 그때마다 낙선하는 어느 소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숙부는 늑대』는 인간의 권력욕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순정성이 될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초식』은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 「다니엘」처럼 채식을 하는 주인공의 우스꽝스런 행위를 통해 인간의 무용한 정열을 드러내고 권력을 야유한다.
그러나 권력의 형식과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이같은 「정치현장의 선거」보다는 「교육현장의 선거」를 다룬 소설에서 더많이 발견된다. 이는 정치현장보다는 교육현장이 공간적으로 그 관찰과 분석 및 상징화가 용이하고, 정치권력 묘사는 우회적인 접근이 안전하다는 작가들의 소극성등에 상당부분 의존한다.
현길층씨의 단편 『급강선거』는 교사와 학부모들의 탐욕에 의해 급장·부급장이 나눠먹기식의 윤번제로 채택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전상국씨의 단편 『돼지새끼들의 울음』에는 폭군담임에 대한 신임투표를 결행하는 고등학생들이 무기명투표임에도 불구하고 거의가 찬성표를 던지는 장면을 삽입, 현존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전형화하고 있다.
또 최근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이문열씨의 중편『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철옹성과 같은 권력이 비참하게 붕괴되는 과정을 어린아이들을 통해 묘사, 권력구조의 도표를 그려보인다. 폭력과 술수, 음모등을 동원해 급우들의 우상으로 군림해온 한 소년이 어느날 갑자기 담임선생에 의해 비행을 폭로 당하고, 곧이어 비행의 공모자이기도한 자신의 추종세력들로부터 순식간에 추방당하는 말로가 선거를 통해 절정을 이루는 이 소설은 권력의 생리를 섬뜩하게 해부, 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기도 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선거를 다룬 우리 소설들은 왜 한결같이 선거나 권력을 부정적·패배주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는가에 주목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자연인이 사회화되는 축제공간으로서의 선거는 개인과 세계의 관계를 탐색하는 소설장르의 영역을 확대·심화시킬 수있는 드문 소재라는 점에서 『이번 대통령선거의 거대하고 미세한 양상들이 우리소설 속으로 객관적으로 유입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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