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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사상 첫 일자리 시정연설…“실업대란 방치하면 국가재난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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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2일 “현재의 실업대란을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재난 수준의 경제위기로 다가올 우려가 있다”며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라도 고용을 개선하고, 소득격차가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추가경정예산안 설명을 위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문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수 실적이 좋아 증세나 국채발행 없이도 추경예산 편성이 가능하다. 대응할 여력이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다면 정부의 직무유기이고, 나아가서는 우리 정치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며 이처럼 강조했다. 지난달 10일 취임한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을 위해 33일 만에 국회를 직접 찾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빠른 대통령의 시정연설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위해 12일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면서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위해 12일 국회 본청으로 들어서면서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인 11.2%를 기록한 지난 4월 청년실업률 등을 거론한 뒤 “특단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지 않으면 '에코붐세대'의 주취업연령대 진입이 계속되는 동안 청년실업은 국가재난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한 세대 청년들의 인생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코붐 세대(echo boomers)는 대개 1968~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baby-boom) 세대가 낳은 1991~1996년생 자녀를 가리킨다.

문 대통령은 소득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5분기 연속 감소한 반면 같은 상위 20% 계층의 소득은 늘어난 통계를 제시한 뒤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잘 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들은 더 못살게 되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은 참으로 우려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대선 때 강조한 ‘소득 주도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장의 결과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늘려 성장을 이루는 경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면서다.

문 대통령은 “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은 민간과 정부가 함께 추진해야할 국가적 과제”라며 “그러나 빠른 효과를 위해서는 공공부문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4500명의 신규 중앙 공무원 채용을 위한 준비 비용 80억원이 추경안에 포함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곤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한 일은 하는 정부’”라며 “단 1원의 예산도 일자리와 연결되게 만들겠다는 각오"라고 말했다. "정부의 모든 정책역량을 일자리에 집중할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의 40% 정도인 A4용지 4장 분량을 추경안 내용의 설명에 할애했다. “경찰관, 부사관, 군무원, 집배원, 가축방역관 등까지 합쳐 국민 안전과 민생 현장에서 일할 중앙과 지방 공무원 1만 2000명을 충원해 민생서비스를 개선하겠다”,“노인 공공일자리를 3만개 늘리고 일자리 수당을 월 22만원에서 월 27만원으로 인상하는 예산을 반영했다”고 밝히며 구체적 숫자도 제시했다. 설명 도중 국회 본회의장 스크린에는 발표 화면자료를 띄워 의원들이 연설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사상 첫 일자리 시정연설을 하면서 국회 본회의장 스크린에 발표 자료를 띄워 의원들의 이해를 도왔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사상 첫 일자리 시정연설을 하면서 국회 본회의장 스크린에 발표 자료를 띄워 의원들의 이해를 도왔다. [사진 청와대]

문 대통령은 대국민-대국회 설득을 위해 감성적인 접근도 했다. “실직과 카드빚으로 근심하던 한 청년은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에 이렇게 썼다. ‘다음 생에는 공부를 잘할게요.’ 그 보도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 모든 의원님들이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취업난에 시달리다 자살한 취업준비생의 사례를 들어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과로로 쓰러진 소방관 이야기 등 일자리 문제와 관련한 사례도 연설 초반부에 나열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버틸 힘조차 없는데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다. 국민이 힘들면 지체 없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야당의 반대로 임명이 지체되고 있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의 이름을 연설에서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대신 연설 마지막 부분에 “정부는 비상시국에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상황에서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조속히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국회의 협력을 부탁드린다"는 말로 협조를 부탁했다. 이어 "저와 정부도 국회를 존중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협의해나가겠다”고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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