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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여덟 고종 손녀, 땅 소유권 60억 소송 낸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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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녀 이해원(98) 옹주와 그의 가족이 서울 서대문 일대의 땅 소유권을 주장하며 낸 소송에서 졌다.

황실 가족의 비운을 겪은 뒤 60여 년 전의 혼란 상황에서 주인이 바뀌었다는 주장이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원 옹주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의 둘째 딸이다. 고종이 낳은 9남 4녀 중 성인으로 자란 자녀는 순종과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 넷 뿐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인 덕혜 옹주가 해원 옹주의 고모가 되는 셈이다.

의친왕의 둘째 딸 이해원(98) 옹주. 사진은 2006년 대한제국 황족회가 제 30대 왕위 계승자로 추대할 당시 모습. [연합뉴스]

의친왕의 둘째 딸 이해원(98) 옹주. 사진은 2006년 대한제국 황족회가 제 30대 왕위 계승자로 추대할 당시 모습. [연합뉴스]

의친왕은 일본인과의 결혼을 거부하고 1919년 상해로 망명을 하려다 신의주 안둥역(단둥의 옛 이름) 열차 안에서 일본 경찰에 잡혔다. 그 후로 12년간 창덕궁에서 감금 생활을 했다.

해원옹주는 1919년 사동궁(의친왕의 사저)에서 태어나 1936년 경기고녀(현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같은해 충청도 갑부의 아들 이승규씨와 결혼했다. 게이오 대학 법문학부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살기도 했다. 남편이 납북된 후 가세가 기울었고, 1992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2002년 귀국했다.

해원 옹주의 아버지이자 고종의 다섯재 아들 의친왕. 국내에서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감금되기도 했다. [중앙포토]

해원 옹주의 아버지이자 고종의 다섯재 아들 의친왕. 국내에서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감금되기도 했다. [중앙포토]

해원 옹주와 가족이 낸 소송은 과거에 남편 이승규씨 명의로 돼 있던 땅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해원 옹주 측은 남편 이승규씨가 고위 법조인이었던 김모씨에게 사채를 빌리면서 등기부등본과 도장·인감증명을 전달했는데, 이씨가 6·25 전쟁 전후 강제 납북되는 과정에서 주인이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 확인해보니 땅이 김씨 집의 머슴으로 일하던 사람 앞으로 가등기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의 땅은 서울 연희동 안산 일대 임야, 서대문구청 북쪽의 안산 벚꽃길, 신연중학교 남쪽 땅 등 총 1만 9368㎡(5859평)로 개별 공시지가로 따지면 30억원 정도 가치가 있다.

해당 토지는 1995년 정부 부처와 연희동 주택조합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1999~2000년 서울시가 '공고 용지 협의 취득' 명목으로 땅을 이전받으며 피고(땅 주인)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해원 옹주 측은 “1948년의 소유권이전등기가 매매계약서 등을 위조해 이뤄진 것이어서 무효”라고 주장하며 건설교통부·노동부 등 옛 정부부처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지역 주택조합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을 냈다.

원고 측은 피고들이 소유권을 침해한 채로 보상금을 부당하게 챙겼다며 부당이득금과 지연손해금을 합해 약 60억원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재판부 “남편 사망시 상속됐고 소유권 이전등기 이뤄져”

하지만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는 이 사건에 대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승규(해원 옹주의 남편)씨 소유였던 토지는 1943년 이씨가 사망하면서 장남 진휴씨에게 상속됐고, 1948년 매매계약에 따라 소유권 이전등기가 이뤄졌다"고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남편 사망 전후의 상황도 해원 옹주의 기억과 다른 판단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토지 소유권이 서울시로 이전될 당시 해당 토지가 원고들 소유였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더 살펴볼 필요없이 이유 없으므로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2012년에도 해원 옹주 등 16명은  "선친 이기용(해원 옹주의 양아버지)씨 소유였던 경기도 하남시의 땅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다. 이기용씨는 흥선대원군 큰 형의 종손으로, 해원 옹주의 아버지인 의친왕이 자녀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자녀들을 이기용씨 양자로 입적시켰다.

고종 황제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의친왕, 순종 황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 셋째아들 영친왕, 고종황제, 순종 황제의 왕비 순종효황후 윤대비, 의친왕의 왕비 덕인당 김비, 의친왕의 큰아들 이건. [연합뉴스]

고종 황제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의친왕, 순종 황제, 고종의 외동딸 덕혜옹주, 셋째아들 영친왕, 고종황제, 순종 황제의 왕비 순종효황후 윤대비, 의친왕의 왕비 덕인당 김비, 의친왕의 큰아들 이건. [연합뉴스]

해원 옹주는 2002년 귀국 이후 경기도 하남시 월세방에서 공사장 노동일을 하는 둘째 아들과 살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2006년 일부 황손들이 모여 구성한 대한민국 황족회가 해원 옹주를 문화대한제국 여황으로 추대하고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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