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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기고 싶은 건 내가 만든다…문화 투자자로 나선 팬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스테이지 메이커스로 성사된 공연 무대에 오른 DJ 히치하이커. [사진 로엔엔터테인먼트]

지난달 스테이지 메이커스로 성사된 공연 무대에 오른 DJ 히치하이커. [사진 로엔엔터테인먼트]

# 5월 26일 금요일. 서울 어느 근사한 곳. 히치하이커의 파티.
이것은 비밀 암호가 아니다. 멜론 티켓이 주문생산 플랫폼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에서 선보이고 있는 공연 크라우드 프로젝트 ‘스테이지 메이커스’에 등장한 상품이다. 아티스트와 날짜 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지만 투자자가 100명 이상 모이면 공연이 성사된다. 그 결과 프로듀서 겸 DJ 히치하이커는 서울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사우나 룸 라이브’를 통해 1500명의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뮤지컬 '캣츠' 등 #크라우드펀딩 통해 초반 흥행몰이 성공 #게임, 아이돌 화보집, 수제맥주 유통 등 #문화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퍼져나가 #"팬덤 강하고 의미 있을수록 성공률 높아"

# 회사원 이모(33)씨는 최근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성공에 덩달아 신바람이 났다. 지난달 크라우딩 중개업체 와디즈를 통해 투자한 200만원에 연 5.0%(6개월 만기)의 수익률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해당 금액은 상영관이 없어 영화를 보지 못하는 이가 없도록 배급 비용에 사용됐다. 이씨는 이제 다음달 막을 올리는 뮤지컬 ‘캣츠’의 성공을 빌고 있다. 관객 수 9만5000명을 넘기면 2.5%를 시작으로 10만명 5.0%, 11만명 11% 등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개봉 2주 만에 관객 140만을 돌파한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마케팅 비용을 마련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개봉 2주 만에 관객 140만을 돌파한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마케팅 비용을 마련했다. [사진 CGV아트하우스]

문화를 만난 크라우드펀딩이 변모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부족한 제작비를 모으는 방식에서 아예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직접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판도라’를 시작으로 ‘너의 이름은.’, ‘재심’ 등 영화 분야의 성공 사례가 차곡차곡 쌓이자 장르도 뮤지컬ㆍ전시ㆍ게임ㆍ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이달 청약을 앞둔 사진전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과 모바일 소셜네트워크게임 ‘판타지팜’ 등 그 면면도 다양하다.

자신이 투자한 문화상품의 성공을 기원하며 열성 소비에 나서니 자연히 마케팅 효과도 커진다. 이른바 좋아하는 것과 일하는 것의 교집합을 찾는 ‘덕업일치’인 셈이다. 와디즈 신승호 마케팅실 이사는 “영화나 게임의 경우 첫 주 관객수나 다운로드 순위 등이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투자자가 곧 실제 소비자이기 때문에 열성적으로 입소문을 내는 등 마케팅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투자와 소비가 분리되어 있었다면 이왕이면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에 투자하며 즐기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류 전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메이크스타에서 진행 중인 B.A.P 화보 제작 프로젝트. [사진 메이크스타]

한류 전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메이크스타에서 진행 중인 B.A.P 화보 제작 프로젝트. [사진 메이크스타]

크라우드펀딩은 아이돌 화보집 제작이나 팬사인회 개최 등에도 손길이 미치고 있다. 글로벌 한류 전문 크라우드펀딩을 표방하는 메이크스타가 대표적이다. 보상형으로 특화된 이곳에서는 B.A.P 화보집 제작 프로젝트, NC.A 싱글 앨범 제작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획사와 스타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싶은 팬들이 손을 잡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내가 만든다”는 제작자 정신으로 임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6인조 아이돌 B.A.P 화보집을 만드는 데 투자하면 한정판 화보집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예제작자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여기에 100% 달성시 팬사인회, 200% 달성시 포토엽서 세트 추가, 300% 달성시 하드커버 업그레이드 등 특전이 추가되는 식이다. NC.A의 경우 1000원부터 100만원까지 투자금액에 따라 식사를 겸한 팬미팅, 보드게임 데이트, 뮤직비디오 촬영현장 초대 등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돼 있다.

메이크스타 김재면 대표는 “아이돌 팬덤 특성상 회차를 거듭할수록 성공률이 높다. 스텔라 앨범 프로젝트는 첫번째 400%, 두번째 500%, 세번째 1100%를 달성했다”며 “해외 결제 비율이 평균 70% 정도로 반응이 좋아 드라마 등으로 분야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구 달서지역의 이름을 따서 만든 달서맥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 세븐브로이맥주]

대구 달서지역의 이름을 따서 만든 달서맥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유통망을 확대하고 있다. [사진 세븐브로이맥주]

문화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되는 움직임도 있다. 세븐브로이에서 생산하는 지역 기반형 수제 에일 맥주에 반한 소비자들이 대형 마트에 한정된 유통망을 편의점으로 확대하는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식이다. 이들은 직접 강원도 횡성의 브루어리를 찾아 맥주에 바베큐를 즐기며 주주총회를 열고 브루어링 교육도 받는 등 체험과 접목한 방식의 투자를 한다. 일반 주식 투자와 달리 “내가 바로 주주”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효과도 있다.

크라우드펀딩을 맞춤형 제작과 연계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크라우딩 공연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방지연 로엔엔터테인먼트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3000만명이 이용하는 음원사이트 멜론의 빅데이터를 통해 취향에 맞는 음악뿐만 아니라 공연 추천도 가능하다”며 “인디 아티스트 공연 지원이라는 스테이지 메이커스의 본래 목적에 EDMㆍ레전드ㆍ힙합ㆍ언플러그드 등 4개 테마를 신설해 보다 다양한 공연을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페스티벌은 10개 중 7개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는 등 펀딩의 성공확률이 높지 않은 편이다. 와디즈 신승호 이사는 “문화 분야는 확고한 팬덤이 존재하거나 다양성 영화 등 명분이 분명해야 소구력이 높다”며 “크라우드펀딩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체에너지나 전기자동차 등 라이프스타일 분야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지만, 투자요건과 기업 재무상태 등을 꼼꼼히 살피고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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