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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상상력 공장’ ‘꿈의 연구소’ MIT 미디어랩을 가다…혁신과 열정이 넘치는 현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MIT미디어랩은 ‘꿈의 연구소’, ‘상상력 공장’으로 불린다. 터치스크린, GPS, 가상현실, 3차원 홀로그램, 전자책, 인공지능 등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꿔놓은 이런 기술의 초기 컨셉트가 모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에서 일궈졌다.

멀티미디어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와 인공지능의 창시자로 불리는 마빈 민스키가 1985년 MIT 안에 미디어랩을 설립했다. 그후 과학과 미디어 아트의 융합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자유분방한 예술인과 고지식한 이공계 엔지니어의 끈끈한 협업이 이 연구소의 핵심역량이다.

지난달 방문한 MIT미디어랩은 미국 보스턴 찰스강변의 고즈넉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아담한 크기로 시작했지만 1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과 단체들의 지원금과 공동연구로 규모가 커졌다. 현재 30여 명의 교수진과 170여 명의 연구원들이 있다. 한해 예산이 6000만 달러(약 700억원)에 달한다.

조이 이토 MIT미디어랩 소장은 “미디어랩의 연구과제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표현을 더 발달시킬까, 인간의 표현을 돕는 도구들을 만들어낼 수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된 것들”이라고 말했다.

탠저블(Tangible) 미디어팀이 개발중인 ‘트랜스폼’이라는 기술에서 표현의 다양화를 엿볼 수 있었다. 처음엔 침대와 같은 가구를 염두에 뒀다. 편평한 면을 이루는 큐빅들이 제각각 반응하면서 인체가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침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연구팀의 필립 슈슬러는 “가구는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지만 움직임과 삶을 가구에 불어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탠저블 미디어는 사람의 손길을 따라 춤추듯이 움직이는 예술 도구로 만들어졌다. 이런 모티브는 금방이라도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뉴욕 타임스퀘어의 광고판 기술로도 이어졌다.

미디어와 과학의 융합이라는 거대 담론에 따라 미디어ㆍ예술ㆍ과학을 전공한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 참신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있었다. 시자르 히달고 조교수는 “나는 주로 과학적인 질문을 하는 입장이었는데, 예술을 전공한 연구자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또다른 측면을 깨닫게된다”고 말했다.
물론 미디어랩 설립 초기에는 영역간 장벽이 존재했다. 수학자들은 물리학자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물리학자들은 예술가들 또는 음악가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관심분야가 다르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변화를 선도해보자는 미디어랩의 초심이 이어지면서 모두가 하나의 미션에 전념하게 됐고, 결국 혁신의지와 열정으로 영역간 장벽이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인간표현의 한계는 바이오메카트로닉스 연구팀에서 극복되는 중이다. 1982년 산행 중 두 다리를 잃은 휴허 교수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로봇의족을 단 상태에서 걷고 뛰면서 보다 나은 운동표현을 연구 중이다. 휴허 교수는 “이 곳에서 신체장애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연구팀은 현재 단순한 의족이 아니라 뇌신경과 연결해 실제 자신의 다리처럼 움직이는 로봇의족을 개발중이다.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은 상이용사가 로봇의족을 착용하고 산을 뛰어다니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경의학과 공학, 디자인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한국인 연구원이 주축이 된 테가로봇팀은 어린이의 어휘력을 키워주는 교육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테가로봇에는 상대편 아이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알고리즘이 이식돼 있다. 아이들에게 의미 전달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30가지를 도출해 로봇에 저장했다. 아이가 요구하는 것에 편하게 추임새를 넣어 금세 친구 같은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고 한다. 박혜원 박사는 “사람들이 앞에 있는 로봇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평생 동반자 같은 로봇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듀오스킨 연구팀은 겉으로 봤을때는 문신을 연구하는 곳으로 오인할 정도로 다양한 문양을 개발중이다. 멋진 타투처럼 보이는 듀오스킨은 실제 피부에 이식돼 자신의 모바일 기기와 소통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로 작동한다. 데이터 저장도 가능하다. 예술과 미디어의 결합인 셈이다.

리프만 부소장은 “다양한 전공의 연구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하되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적의 안식처를 만들어내는 데 미디어랩의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보스턴=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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