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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도시 어린이 아버지에 부정적 시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한국방송사업단(주)과 금성출판사가 최근 마련한 전국 소년소녀 글짓기대회에는 모두 16만여명의 청소년들이 참가, 생활주변의 얘기들을 갖고 솜씨를 겨루었는데 상당수의 작품들이 주변환경에 대한 강한 부정적 이미지나 거의 획일적이고 삭막한 생활체험을 담고 있어 관심을 끈다.
「내 몸집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오늘도 화난 얼굴로 학교에 간다 무엇이 들었길래 그렇게 무겁니? 공갈하는 사회책 따지고 계산해야하는 산수책 외야하는 자연책 부를게 없는 음악책 꿈이 없는 국어책」한 국민학교 어린이가 쓴「무거운 책가방」 이라는 동시의 일부.
이「책가방」의 경우『무겁다』『지겹다』『정말 싫다』는 투의 얘기가 대부분이고 특히 「아버지」는 「술」「폭력」을 연상케하는 인물로 노골적인 증오나 저항의식을 나타낸 경우가 많았다는게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지적.
예컨대 『공부 안한다고 소리치는 아버지』『12시가 넘어서 들어오시고』『술만 먹으면 엄마를 때리는』또 『밤새도록 친구분의 욕, 회사사장님의 욕』등 주정을 하고 『엄마와 싸우는』『불만이 마음속에 꽉차 있는』 아버지가 「술주정뱅이」「돈 버는 기계」「무능력자」「얄미운」「불쌍한」사람으로『밉고 싫다』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도시청소년들의 작품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 탄광촌 등 지역어린이들이 『열심히 일하는』『까만 얼굴의 아버지』에 대해 존경과 연민을 주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작가 구혜영씨(심사위원)는 말한다.
더 나아가 『우리 (청소년)가 나아가야할 「길」은 오직 공부라고만 생각하는 어른들』
『겉과 속이 다른 말과 행동을 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빈정거림과 비판, 저항도 두드러진다.
『법관이 되면 돈을 많이벌 것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원하는 과에도 못가고 알아주는 곳만 보내려하는』, 도무지(우리가)『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려는지 너무도 몰라주는 우리 기성세대들』, 『정직을 말하라고 하면서도 정직을 말하지 못하게하는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두들겨 모두 부서지게 하고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서슴없이 외친다.
시인 박화두씨 (심사위원·한국아동문학회장)는 청소년들의 이같은 부정, 저항의식에 대해『사회·가정·학교등 교육환경에 기본문제가 있는 때문』이라며 그 강도가 더해가는 것을 우려하고 청소년들이 도시·농촌 할것 없이 정서적인데서 멀어져가고 있음을 걱정했다.
아동문학가 윤우중씨 (심사위원·새싹회회장)도 청소년들이 『제 마음을 털어놓고 생각을 다듬어서 길게 쓰는데 서툴다』는 평과 함께 서울·지방, 어른·아이의 구별이 안되는 『삭막하고 획일적인 교육환경』의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 응모작중에는 국민학교 1년생이 쓴 『지우개아가씨의 팔장을 끼고 연필여관으로 놀러갑니다』는 얘기부터 『어머니가 오셔서 다 써주기 때문에 나는 최우수상·우수상장도 받는다』『집에 오자마자 냉장고에서 닥치는 대로 마구 먹었다…망할놈의 운동회』『(소풍가서) 뽑기를 했는데 6만원짜리 좋은 것이 나왔다』『잠자리들이 모이면 병신 대잔치』등 어른 중심, 도시문화의 삭막함을 그대로 느끼게하는 「섬뜩한」 얘기들이 등장, 읽는 이들을 아연케 하기도 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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