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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고위 공직자 인사 배제 원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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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중앙일보 <2017년 5월 27일자 26면>
고위공직, 구체적‘인사 배제 원칙’검토해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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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까지 위장전입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접해야 하는 국민들 마음이 착잡하다. 위장전입으로 낙마한 과거 사례들과는 달리 부동산 투기 목적이 아니라 해도 자녀 취학·진학을 위한 위장전입 역시 불법이 아닌 게 아닌 만큼 후보자들이 지명된 공직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췄는지 의심받기 충분한 까닭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때 제시한 ‘5대 인사 배제 원칙’에 위배됨을 무릅쓰고 인사를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인사 실패로 집권 초반의 국정 동력을 상실한 전 정권들의 잔상이 겹쳐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 어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민이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인사”에 대해 사과하고 “선거캠페인과 국정운영의 무게가 같을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위장전입 같은 명백한 범법 행위와 무관한 사람 중에는 고위공직 적임자를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불행한 치부가 아닐 수 없다. 관(官) 주도 고속성장과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 이면의 그늘로서, 이번 정권뿐 아닌 역대 정권이 겪어 왔던 병통(病痛)인 것이다. 야당들이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면서도 “절대 불가”를 외치지 못하는 것도 그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같은 흠결을 놓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된다, 안 된다 입장만 바뀌어 다투며 국력을 낭비하는 행태는 이제 청산해야 한다. 이참에 여야가 협의해 구체적인 ‘인사 배제 원칙’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특히 일반 국민들의 무의식적 위반도 많은 위장전입의 경우 시점과 목적성, 반복성 등을 고려해 옥석을 구분할 구체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인사 기준’을 마련해 사전 공표한다면 능력 있는 인물들이 한순간의 욕심으로 오점을 남겨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버리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그것이 인재를 널리 구해 융성해 나갈 수 있는 국운(國運)이기도 하다.

한겨레 <2017년 5월 27일자 23면>
임종석 비서실장의 사과와 ‘국무총리 인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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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원칙 위배 논란과 관련해 임종석 비서실장이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야당이 위장전입 등을 이유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자 대통령 비서실장이 양해를 구하고 나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탈세,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를 공직에서 배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장관 후보자들이 잇따라 위장전입 논란에 휩싸였으니 몹시 곤혹스러울 것이다. 경위가 어떻든 간에 청와대가 국민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는 건 당연하고 바람직한 행동이다.

다만 위장전입이라고 해서 모두 도매금으로 비판할 일은 아니다. 구체적인 내용과 상황을 따져 합당한 비판을 하는 게 사리에 맞는다. 이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은 교사였던 부인이 좋은 학교를 배정받기 위한 것이어서 분명 도덕성의 문제가 있지만 재산상의 이익을 노린 위장전입과는 성격이 다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우엔 부인의 근무지 이동과 김 후보자의 해외연수 등에 따른 것이어서 과거의 고질적인 위장전입 사례와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긴 어렵다.

청와대는 자체 인사 기준을 마련하기로 하고 국정기획자문위에도 인사 기준 공론화를 요청했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공약한 ‘5대 인사 원칙’을 ‘없던 일’로 하거나 그 취지를 크게 훼손하는 건 곤란하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고위 공직자들의 위법 사실이나 도덕적 불감증이 자꾸 드러나면 정부가 일반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기가 매우 면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야당은 비서실장 대신 문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언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나선다면 국민에게 훨씬 진솔하게 받아들여질 게 분명하지만, 위장전입 사안 하나만으로 총리 인준 여부를 판단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새 정부는 인수위도 없이 닻을 올린 상태다.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을 가진 국무총리 인준이 늦어지면 그만큼 내각 구성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사과와는 별개로, 위장전입이 총리 인준의 결정적 결격사유인지를 국회가 종합해서 판단 내리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논리 vs 논리
현실 고려 새 인사 원칙 세워야 vs 위장전입 경중 따져 판단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5대 인사 원칙이 무너진 데 대해 사과하고 있다. [중앙포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5대 인사 원칙이 무너진 데 대해 사과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공직 배제 5대 원칙’을 앞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나흘 후인 지난해 12월 13일, 문 대통령은 ‘정책 공간 국민 성장’ 포럼에서 “광장의 촛불은 구시대 대청소와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을 외치고 있고, 이제 정치가 길을 제시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5대 개혁 과제로 검찰과 재벌, 행정, 언론, 입시를 꼽은 뒤, “병역 면탈,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 표절에 대해서는 고위 공직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공직 배제 5원칙은 문 대통령을 과거 정권과 도덕성에서 차별화하는 주요 공약으로 소개되곤 했다.

그러나 공직 배제 5대 원칙은 문재인 정부 첫 인사에서부터 문제에 부닥쳤다. 국무총리 후보자와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까지 위장전입 논란에 빠져든 것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나서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사과하게 된 배경이다.

이에 대해 한겨레와 중앙은 한목소리로 우려를 보낸다. 한겨레는 “문 대통령이 공약한 ‘5대 인사 원칙’을 ‘없던 일’로 하거나 그 취지를 크게 훼손하는 건 곤란”하며, “사소한 것일지라도 고위 공직자들의 위법 사실이나 도덕적 불감증이 자꾸 드러나면 정부가 일반 국민들의 양해를 구하기가 매우 면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우려를 보낸다. 중앙 역시 “‘5대 인사 배제 원칙’에 위배됨을 무릅쓰고 인사를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인사 실패로 집권 초반의 국정 동력을 상실한 전 정권들의 잔상이 겹쳐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며 걱정한다.

그럼에도 두 사설은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현재 정부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렇듯 두 사설의 입장은 비슷하나 접근 방법에 있어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한겨레는 “위장전입이라고 해서 모두 도매금으로 비판할 일은 아니다”며 선을 긋는다.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은 재산상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큰 흠결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새 정부는 인수위도 없이 닻을 올린 상태”이고, “국무위원 임명 제청권을 가진 국무총리 인준이 늦어지면 그만큼 내각 구성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위장전입이 총리가 될 수 없는 결격사유가 되는지는 “국회가 종합해서 판단을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린다. 과거 사례들에 견주어 경중을 따져보면 후보자가 지닌 흠결이 인준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다가오는 주장이다.

반면에 중앙은 “자녀 취학·진학을 위한 위장전입 역시 불법이 아닌 게 아닌 만큼 후보자들이 지명된 공직에 걸맞은 도덕성을 갖췄는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며, 후보자에게 윤리적인 문제가 있음을 적시한다. 다만 중앙은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위장 전입 같은 명백한 범법 행위와 무관한 사람 중에는 고위 공직 적임자를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불행한 치부”라며, 현재로서는 총리 인준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2000년, 16대 국회에서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자격 없는 공직 후보자를 걸러내고 지도층 스스로 도덕성을 다잡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반면에 정치적 이해에 따라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무차별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정부 요직 인선에 들면 망신당한다”는 식의 공직 기피 분위기를 낳은 측면도 있다. 그 때문에 중앙은 “여야가 협의해 구체적인 ‘인사 배제 원칙’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한겨레의 생각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겨레는 “청와대가 자체 인사 기준을 마련하기로 하고 국정기획자문위에도 인사 기준 공론화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지난달 31일 열린 국무총리 후보 인준안 표결에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참여하지 않았다. 정권 초기의 ‘협치’ 분위기가 깨진 셈이다. 6월 임시국회에서는 10조원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다루어질 예정이다. 그 가운데는 문 대통령이 공약했던 공공부문 인력 충원을 위한 예산도 포함돼 있다. 정치에서는 명분이 무기가 되곤 한다. 도덕적인 흠결 탓에 정책 추진에 발목을 잡혔던 이전 정권들의 구태가 반복될지 지켜볼 일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