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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가야사 최초 왕궁터 발굴되나...문 대통령 가야사 복원 지시로 탄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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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김해 봉황동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에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유적 발굴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5일 김해 봉황동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에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이 유적 발굴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5일 경남 김해시 봉황동 유적 발굴지(5000㎡). 3~4세기경 큰 영향력을 떨쳤던 금관가야의 왕궁 추정지 일부다. 인근에 김수로 왕릉과 구지봉, 대성동 고분군 등이 있다.

내년 말까지 김해 봉황동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 발굴 중 #고위층이 사용한 유리장식품,고래 뼈 등 500여점의 출토 #경남도 등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등재 추진

평상복에 모자를 쓴 10여명의 발굴 전문가들이 조그마한 삽과 붓 등을 들고 2~3m 깊이로 파 놓은 땅속에서 유적 발굴에 한창이었다. 집·우물 터 등이 있던 자리에 흰색 선을 표시해놓고 그 주변 흙들을 조금씩 벗겨내는 작업하고 있었다. 다른 작업자는 유적의 모양과 크기를 자로 재서 작은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이곳 발굴을 맡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민경선 학예연구사는 “진한(경북 일대)·변한(경남 일대)·마한(호남 일대)을 중심으로 한 삼한 시대를 지나 3~4세기경에는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가 가장 영향력이 컸는데 이곳이 금관가야의 왕궁 터로 추정돼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경선 학예연구사가 5일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에서 가야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민경선 학예연구사가 5일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에서 가야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15년 9월 시작된 발굴은 내년 말까지 계속된다. 현재까지 곡식을 담거나 찌는 항아리와 시루 같은 생활 토기, 철을 제련할 때 공기 통로가 된 ‘송풍관’, 받침대가 있는 굽다리 접시, 토우, 사슴과 고래 뼈 같은 5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이곳이 오랫동안 취락시설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그렇다고 왕궁터였다는 기록이나 이를 뒷받침하는 유물이 나온 것은 아직 아니다. 하지만 가야 고위층 등이 사용한 유리장식품 등이 나와 왕궁터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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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김해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에서 국립가야문화재 연구소 직원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지시하면서 가야사 복원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특히 경남은 가야사 관련 국가 사적 28곳 중 22곳이 있는 가야국의 주 무대다. 특히 김해는 이들 중 금관가야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어서 그동안 진행되던 다양한 복원 작업이 진행돼 왔다. 앞으로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한시대를 지나 고구려·백제·신라가 중심이 된 삼국시대에도 한반도에 가야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들이 여럿 존재했다. 이 중 3~4세기에 가장 큰 세력을 가졌던 나라가 바로 금관가야다. 이 외에도 영남지역만 보면 대가야(경북 고령)·아라가야(경남 함안)·소가야(경남 고성)·비화가야(경남 창녕)·성산가야(경북 성주) 등이 있었다. 이 후 대가야는 5~6세기경 다른 나라들 중에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 이어 금관가야(532년)와 대가야(562년) 마저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경북 고령 지산동 가야 고분군. [사진 권태균씨 제공]

경북 고령 지산동 가야 고분군. [사진 권태균씨 제공]

가야 역사는 사라졌지만 1970년대부터 가야지역에서 대형 고분들이 수십 혹은 수백개씩 발견되면서 가야사 복원 사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가야인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생활터전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왕궁터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아직까지 가야 왕궁터로 확인된 곳은 한 곳도 없다.

이런 가운데 경남·경북도와 경남 김해시·함안군, 경북 고령군 등 5개 자치단체는 지난 2월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을 발족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341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515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79호) 등 3개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올리기 위해서다.

추진단은 내년까지 이같은 고분군에 대한 등재신청 준비를 마친 후 문화재청을 거쳐 202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릴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국제적 지명도를 높이고 가야문화를 새로운 관광자원화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다 김해시는 지난 2000~2004년 1290억원을 들여 추진됐던 대성동고분군 등 가야사 1단계 복원 사업에 이어 노무현 정부때 예산 부족으로 착공조차 못했던 2단계 사업(가야문화관·가야체험관·가야문화공원)과 가야 왕궁 복원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5일 금관가야 &nbsp;왕궁 추정지 발굴 모습. [송봉근 기자]

5일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 발굴 모습. [송봉근 기자]

창원대 남재우(사학과) 교수는 “가야는 삼국시대 신라·백제와 비슷한 수준의 문화를 갖고 있던 나라였는데 그동안 연구가 미진했다”며 “고분은 물론 생활터전이 됐던 왕궁과 성곽 등에 대한 발굴과 조사가 이뤄져야 가야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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