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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통신 기본료 폐지 속도내는 정부 … 유통업자 피해 대책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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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도년산업부 기자

김도년산업부 기자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인 통신 기본료 1만1000원 폐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1일 미래창조과학부 업무보고에서 기본료 폐지 등 통신비 관련 공약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장은 “공약은 실천하라고 있는 것”이라며 공약 이행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통사들 마케팅비 축소 불가피 #보조금·리베이트 줄어들 경우엔 #알뜰폰도 가격 경쟁력 사라져 #부작용 줄일 상생 전략 마련해야

스마트폰 사용으로 데이터 요금제가 보편화한 현재, 통신요금 명세서에 찍히는 기본료는 사라졌다. 하지만 음성·문자메시지 등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신망이 이미 구축된 만큼, 망 투자에 들어간 가입자당 원가 1만1000원은 더는 걷지 말아야 한다는 게 여권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피처폰·스마트폰 사용자 모두 해당한다.

그러나 기본료 폐지에 따른 후폭풍을 고려하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소비자는 물론 단말기 유통업자, 알뜰폰 사업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기본료 폐지의 영향을 받게 된다.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본료가 없어지면 곧바로 영업적자에 빠질 것이란 이통사들의 주장은 절반만 맞는 얘기다. 매월 기본료 1만1000원을 일괄 폐지하면 이통 3사는 7조9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해 영업적자에 빠질 순 있다. 그러나 기본료 폐지 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영업이익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기본료 폐지로 적자가 불가피해지면 이통사들은 마케팅비·주주배당금·설비투자비 등을 줄여 적자를 만회할 순 있다”며 “다만 배당금은 외부 투자 유치, 설비투자비는 시장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계속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마케팅비를 줄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통사들이 쓰는 마케팅비의 90%는 소비자들에 지급되는 단말기 보조금과 단말기 유통업자에 대한 리베이트, 가입자 관리를 위한 멤버십 비용, 콜센터 운영비 등으로 쓰인다. 마케팅비가 감소하면 함께 줄어들 수 있는 항목들이다.

소비자는 기본료 폐지로 통신비를 줄일 수 있겠지만 대신 단말기 보조금 혜택도 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단말기 유통업자들에게 지급되는 리베이트가 줄면 30만~40만 명에 이르는 이들의 생계가 곤란해질 수 있다. 유통업자들은 리베이트를 바탕으로 이통사 직영점이나 단말기 제조사보다 더 싸게 단말기를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뜰폰 시장도 어려워지긴 마찬가지다. 현재 CJ헬로비전·SK텔링크·KT엠모바일 등 알뜰폰 사업자들은 이통 3사보다 매달 1만원 가량 싼 통신요금 상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기본료가 폐지되면 알뜰폰 사업자들의 가격 경쟁력도 사라지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알뜰폰 사업자는 “기본료가 폐지되면 소비자들이 알뜰폰을 써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며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40여 개 알뜰폰 사업자들이 통신비 인하 정책 때문에 생계를 걱정하는 건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결국 기본료 폐지는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는 순수하더라도 단말기 유통업자 일자리와 알뜰폰 시장 침체에 대한 대책 없이는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가계 소득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똑같이 1만1000원씩 내려주는 방식도 진정 통신비 인하가 필요한 계층에게 혜택을 집중시킬 수 있는 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기본료 폐지가 미칠 사회적 편익이 얼마나 되는지 정밀하게 시뮬레이션부터 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정책당국은 통신산업도 키우고 소비자 효용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도년 산업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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