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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중3 내내 왕따 피해자’였던 가수 겸 교수의 '왕따 없는 세상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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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를 없애고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학창시절 왕따 피해를 당해본 사람 만이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경희대 교양·스포츠 산업경영학과 겸임 교수인 이성수(61)씨는 왕따를 극복하고 대학 교수가 된 보기 드문 성공 사례다.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 왕따 경험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사회에 알리고 왕따를 학교와 사회에서 추방하는 일에 앞장서는 일을 하고 있다.

중ㆍ고교 시절 6년 내내 지독한 왕따 피해 경험이 약으로 #사회에서 만학으로 대학ㆍ대학원 마치고 대학 교수 변신 #왕따 추방 캠페인 노래 ‘왕따 없는 세상’ 발표-강연도 #‘왕따 극복 모범 사례집’ 발간해 전국 학교에 배포 예정 #

“학창시절 따돌림에 울어야 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왕따가 되고∼ 어른들도 사회에서 왕따가 됐네∼”
1999년 데뷔 후 3집 앨범을 낸 중견가수이기도 한 그는 2012년 ‘왕따 없는 세상’이란 제목의 왕따 추방 캠페인 노래를 발표했다. 노랫말을  통해 학교는 물론 사회로까지 확산되는 왕따 문제의 서글픈 현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노래의 주제는 희망과 격려를 전하는 밝은 내용이다. “아니야 시작은 지금부터야∼ 저 붉은 태양을 향해 뛰어라∼” “세상을 열어보자∼ 좋은 세상이 내 앞에서 기다리잖아∼” 가사도 직접 쓰고, 누구나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경쾌한 리듬의 곡도 자신이 지었다.

’왕따 없는세상 운동본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경희대 교양ㆍ스포츠 산업 경영학과 겸임 교수인 이성수씨. 전익진 기자

’왕따 없는세상 운동본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경희대 교양ㆍ스포츠 산업 경영학과 겸임 교수인 이성수씨. 전익진 기자

“고향인 경기도 여주 지역 중학교에 다닐 때 3년 내내 왕따 피해를 심하게 당했습니다. 교내 불량서클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친구들로부터 툭하면 폭력을 당하고 돈을 뺏기기 일쑤였어요.”
이씨는 가해 친구들을 보지 않기 위해 서울 지역 고교로 진학한 뒤에도 욍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의 왕따 피해 경험으로 정신적으로 짓눌려 다른 친구들을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정신적으로 방황하면서 학습에 흥미를 잃었고 대학 진학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에 진출해 회사 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후 36세의 나이에 직장인들을 위한 4년제 대학 과정인 경희대사이버대학 레져관광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스포츠산업경영학)를 마쳤다. 56세에 박사(이학·스포츠)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14년 3월부터 모교인 경희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왕따 없는세상 운동본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경희대 교양ㆍ스포츠 산업 경영학과 겸임 교수인 이성수씨. 전익진 기자

’왕따 없는세상 운동본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경희대 교양ㆍ스포츠 산업 경영학과 겸임 교수인 이성수씨. 전익진 기자

“왕따 피해 경험이 결코 저에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테니스·복싱·합기도 등 닥치는 대로 운동을 열심히 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단련한 것은 수확이었습니다. 현재 테니스 등 사회생활체육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으까요.”
그는 학창시절 왕따를 당하면서도 여기에 주눅들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앞으로 성공해 가해 학생들에게 내가 당당히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리라'고 굳게 마음 먹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도 했다.

이씨는 왕따 추방 노래를 발표하기 1년전 왕따 없애기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뜻을 같이 하는 지인들과 ‘왕따 없는 세상 운동본부’를 창설, 회장직을 맡아 7년째 활동 중이다. 같은 시기부터 대한청소년골프협회장직도 맡고 있는 그는 연예인과 명사 등이 참여하는 자선골프 대회를 열어오고 있다. 수익금의 일부를 왕따 추방 운동 기금으로 활용하기도 있다. 이 기금으로 청소년 캠프 등에서 회원들과 ‘왕따 추방 강연’을 수시로 하고 있다.

’왕따 없는세상 운동본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경희대 교양ㆍ스포츠 산업 경영학과 겸임 교수인 이성수씨. 전익진 기자

’왕따 없는세상 운동본부‘ 회장직을 맡고 있는 경희대 교양ㆍ스포츠 산업 경영학과 겸임 교수인 이성수씨. 전익진 기자

“이번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전국 왕따 피해 사례 및 극복 수기 발굴 대회’를 열고 있어요. 제출된 수기 가운데 적절한 사례를 선정해 교수 등 전문가들의 극복 및 해결방안을 담아 책자를 만들어 전국 학교에 배포할 예정입니다.”
 그는 이를 통해 왕따 피해 학생들에게 슬기롭게 왕따를 극복할 수 있는 실증적인 모범 사례와 길을 제시해줄 생각이라고 했다. 이씨는 “저의 과거를 돌아볼 때 이 같은 지침서가 있었더라면 피해 극복이 좀 더 수월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모범 극복사례 수기를 공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요즘 대학 교양강좌 시간을 활용해 왕따 추방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따 문제가 교실 뿐 아니라 대학·사회로까지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좀처럼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운 왕따 문제라도 주위에서 좀 더 관심을 갖고 조금만 도와 주면 해결할 수 있어요.”
이 씨는 모두가 왕따 문제를 남의 일로만 볼 게 아니라 나 자신과 내 가족, 내 이웃의 문제로 여기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양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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