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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난관을 넘어야 행복한 결혼이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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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4면

엘리자베스 매켄지(Elizabeth McKenzie) ⓒLinda Ozaki

엘리자베스 매켄지(Elizabeth McKenzie) ⓒLinda Ozaki

운명처럼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한 젊은 남녀가 있다. 사랑하니 뭐든 가능할 것 같았는데 웬걸, 결혼까지는 가시밭길이다. 그동안 눈 감았던 서로의 가치관 차이가 엄청난 장애물로 커져가고, 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하는 엄마는 이유 없이 사윗감을 못마땅해 한다. 마침 남자의 주변에 거대 제약회사의 상속녀까지 등장하니, 지나가던 다람쥐마저 “이 결혼 반댈세” 목소리를 높일 지경이다. 두 사람은 과연  난관을 헤치고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까-.

소설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쓴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매켄지

미국 소설가 엘리자베스 매켄지(59)의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The Portable Veblen)』(스윙밴드)은 결혼이라는 어려운 퍼즐을 풀어가는 한 커플을 유머러스한 문체로 그린 소설이다. 동물과 대화하는 사차원 예비신부 베블런과 세속적인 야심으로 가득한 의사 폴의 러브 스토리에 의료 마케팅과 방위 산업의 세계, 반(反)물질주의 논쟁 등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하게 얽혀 들어간다.

매켄지는 문예 잡지의 소설 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40대 중반에 쓴 『스톱 댓 걸(Stop That Girl)』(2005)로 소설가가 됐다. 2007년 발표한 『맥그레거가 세상에 대고 하는 말(MacGregor Tells The World)』은 시카고 트리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의 언론사가 선정하는 ‘올해의 책’에 뽑혔다. 이후 10여년 만에 발표한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 역시 출간과 동시에 화제를 모으며 2016년 미국 아마존 ‘올해의 책’ 소설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며 ‘시카고 쿼틀리 리뷰’ 등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작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다람쥐와 놀고 있는 저자의 어릴 적 모습.

다람쥐와 놀고 있는 저자의 어릴 적 모습.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은 사랑 이야기인데 서스펜스가 있고 철학적이기도 하다. 어떻게 구상했나.
“함께 하고 싶은 두 사람 앞에 가족이 방해자로 등장해 길을 막는 내용의 코믹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가족 관계의 어려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주는 고통 등을 담으려 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2007년인데, 당시 부시 정부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해 화가 나 커트 보니것의 『제5 도살장』 같은 반전 소설을 쓰고 싶기도 했다. 또 가까운 가족이 심각한 병에 걸려 임상 치료를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임상 시험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속임수와 의료 과실 문제를 파헤쳐보고 싶었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소설에 담겼다.”  
한국에선 결혼이란 당사자들보다 두 가족의 결합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라니 신기했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미국인들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을 갖고 결혼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결혼에는 가족이라는 ‘짐(baggage)’이 끼어든다. 흔히 가족에 대한 고려보다는 로맨스에 파묻혀 사랑을 위해 결혼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 수많은 결혼이 실패하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이런 실패를 경험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두 사람이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했다. 결말은 꽤 긍정적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베블런이 읽는 책이 있다. 스위스 심리학자 아돌프 구겐뷜 크레이그가 쓴 『결혼 : 죽거나 살거나(Marriage: Dead or Alive)』다. 이 책의 메시지는 무척 흥미롭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만이 한 인간 내면의 가장 약하고 방어적인 부분을 직면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으로 더 완전하게 성숙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결혼 생활을 즐겁게 묘사하는 책은 결코 아니지만.”
왼쪽부터 『스톱 댓 걸 (Stop That Girl)』(2005), 『맥그레거가 세상에 대고 하는 말(MacGregor Tells The World)』(2007),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The Portable Veblen)』(2016)

왼쪽부터 『스톱 댓 걸 (Stop That Girl)』(2005), 『맥그레거가 세상에 대고 하는 말(MacGregor Tells The World)』(2007), 『한 권으로 읽는 베블런(The Portable Veblen)』(2016)

주인공의 이름 ‘베블런’은 이 소설의 중요한 메타포다. 소설 속에서 베블런의 어머니는 추앙하던 급진적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의 이름을 따 딸에게 붙였다. 『유한계급론』 등을 쓴 소스타인 베블런은 캘리포니아의 산속에 틀어박혀 살며 자본주의 경제 행위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한 인물이다. 필요와는 상관없이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소비하는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을 만든 학자로 유명하다. 주인공 베블런도 유난히 잇속에 어둡고, 내적인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경제학자 베블런을 좋아하나.
“그는 유토피안 무정부주의자(Utopian anarchist)였고,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삶은 기이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스탠포드대에서 몇 년간 강의를 했는데 지금 내가 사는 집 근처인 산타크루즈 산등성이에서 버려진 닭장으로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내 어머니는 그의 이념을 따르는 베블레니언(Veblenian)이었다. 쇼핑을 범죄처럼 여기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을 비웃고 조롱했다. 어머니는 늘 우리가 얼마나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지를 자랑했고, (사용에는 불편했던) 옷과 가구도 직접 만들었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어머니와 딸 사이의 극렬한 애증 관계는 자전적인 것이었나보다.
“맞다. 소설 속 모녀는 멋진, 하지만 까다로웠던 내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어머니는 1999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어머니가 매우 그립고, 소설을 쓰는 것은 그녀와 긴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기도 하다(물론 머릿 속에서).”
책에는 의료 마케팅에 대한 전문적이고 시니컬한 묘사도 자주 등장한다.
“스탠포드대 병원에서 사무 보조로 일한 적이 있다. 남자 주인공 폴이 의사이기 때문에 관련 의학저널 등을 많이 읽었는데, 그 중 의료 마케팅 용어에 반사적인 혐오감을 느꼈다. 예를 들어 ‘시체를 싸는 천(corpse sachets)’을 정말 명랑하게 소개한다던가, 뇌 수술용 드릴의 성능을 끔찍하게 묘사한 후 ‘뼛가루로부터의 해방!’ ‘아주 간단해요!’ 같은 감탄사를 붙이는 것 말이다.”
주인공이 동물과 대화한다는 설정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것인가.
“소스타인 베블런의 주장에 따르면, 동물은 이 세계의 완벽한 시민이다. 그들은 낭비하지 않고, 과시적 소비도 하지 않으며, 퇴폐적 유흥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화가 마르셀 뒤샹의 이 말을 좋아한다. ‘언어는 글러먹었다. 우리는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Language is just no damn good-we never understand each other).’”  

문학잡지 편집자로 긴 경력을 가진 매켄지는 한국 소설에도 관심이 많다. 달키 아카이브 프레스(Dalkey Archive Press)에서 출간된 한국 소설가 시리즈를 통해 김주영·장정일·김원일·이기호·박완서·박민규 등의 작품을 읽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읽은 작가들 외에도 뛰어난 한국 작가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 믿는다”며 “언젠가 편집자로 한국 현대문학 선집을 출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스윙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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