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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난 류, 끝내준 오 … 함께 웃은 코리안더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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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LA 다저스 류현진(왼쪽)과 세인트루이스 오승환이 1일 같은 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호투했다. 류현진은 선발, 오승환은 마무리로 등판해 맞대결은 없었다. 두 선수 투구 모습을 합성한 사진. [세인트루이스 AP=뉴시스]

LA 다저스 류현진(왼쪽)과 세인트루이스 오승환이 1일 같은 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호투했다. 류현진은 선발, 오승환은 마무리로 등판해 맞대결은 없었다. 두 선수 투구 모습을 합성한 사진. [세인트루이스 AP=뉴시스]

‘변화구의 향연’이 끝나자 ‘돌직구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10년 만에 MLB서 맞붙은 한국 투수 #현진, 세인트루이스전 6이닝 1실점 #현란한 변화구로 “최고 피칭” 평가 #승리 못땄지만 선발 재진입 청신호 #승환, 9회 나와 무실점 12세이브 #3연패 몰린 팀 ‘특급 소방수’ 활약

LA 다저스의 류현진(30)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오승환(35)을 나란히 응원하는 한국팬들 입장에선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한국 선수가 동시에 출전한 메이저리그 ‘코리안 더비’에서 류현진은 선발 재진입의 발판을 마련했고, 끝판왕 오승환은 시즌 12호 세이브를 올렸다.

류현진은 1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6이닝을 1실점(3피안타·4탈삼진·1볼넷)으로 막았다. 류현진은 1-1이던 7회 초 2사 2루에서 대타 오스틴 반스와 교체됐다.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 시즌 두 번째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면서 평균자책점을 3.91(종전 4.28)로 낮췄다.

‘류현진 쇼’가 끝난 이후 ‘오승환 타임’이 시작됐다. 8회 말 덱스터 파울러의 솔로홈런으로 세인트루이스가 2-1로 리드하자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9회 초 마운드에 올랐다. 오승환은 등판하자마자 LA 다저스 선두타자 애드리언 곤잘레스에게 빗맞은 안타를 내줬지만 후속 세 타자들을 가볍게 잡고 승리를 지켰다. 1이닝 1피안타·2탈삼진·무실점을 기록한 오승환 덕분에 세인트루이스는 3연패에서 벗어냈다. 오승환의 평균자책점은 3.00에서 2.88로 낮아졌다.

한국인 투수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맞대결 한 것은 이번이 열 번째다. 지난 2007년 5월 19일 김병현(당시 플로리다)과 류제국(당시 탬파베이)이 나란히 등판한 이후 10년 만에 코리안더비가 열렸다. 당시 한화에서 활약하던 류현진(당시 한화)은 그 해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삼성 소속이던 오승환은 구원왕에 올랐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7년 둘은 빅리그에서 멋진 맞대결을 펼쳤다.

류현진 입장에서 이날 등판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불펜(롱 릴리버)으로 밀린 뒤 닷새 만에 선발 로테이션 재진입의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이 “류현진을 불펜으로 돌리겠다”고 밝힌 이튿날인 26일 류현진은 세인트루이스전에 등판했다. 선발 마에다 겐타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세이브를 올렸다. 그러나 류현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선발로 돌아갈 길이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저스 제2선발인 알렉스 우드(26)가 어깨 통증으로 10일 동안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류현진이 ‘임시 선발’ 기회를 잡았다.

절치부심한 류현진의 피칭은 ‘시위’에 가까웠다. 이날 직구 평균 스피드가 시속 90.9마일(약 146㎞)에 이를 만큼 구위가 괜찮았다. 그러나 보통 절반 정도이던 직구 구사비율을 이날은 27%(77개 중 21개)까지 낮췄다. 직구와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던졌다. 현란한 변화구의 향연이었다.

류현진은 0-1이던 3회 1사에서 맷 카펜터를 상대로 3볼-1스트라이크에 몰렸다. 이후 체인지업과 직구를 차례로 던져 삼진으로 잡아냈다. 낮은 체인지업과 높은 직구의 조합이 카펜터의 시야를 흔들었다. 4회 1아웃 이후 토미 팸과의 승부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2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높은 직구를 던졌으나 팸의 배트가 따라나오지 않자 류현진은 4구째에도 똑같은 코스에 직구를 던져 기어이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김선우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잘 던지지 않던 높은 직구로 타자를 잡았다.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투구”라고 평가했다. 6이닝 내내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간 덕에 볼넷도 1개만 내줬다.

류현진은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등판했던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런 적은 처음이다. 기회가 찾아온 만큼 잘 던져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커터와 슬라이더가 좋았다. 상대타선을 분석해서 직구 비중을 낮췄는데 변화구가 다 잘 들어갔다”며 “팀이 지긴 했지만 나도 선발로서 역할을 했고, 승환이 형도 세이브를 올려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류현진이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날 류현진의 호투로 인해 다저스 선발 경쟁은 다시 복잡해졌다. 클레이턴 커쇼-리치 힐-브랜드 매카시의 입지는 탄탄하다. 우드의 부상도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제5선발 마에다는 류현진이 제칠수 있다는 걸 실력으로 보여줬다. 마에다는 올 시즌 4승2패 평균자책점 5.21을 기록 중이다. 류현진(2승5패·1세이브·평균자책점 3.91)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 마에다는 또 류현진이 갖고 있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없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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