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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연구원 리포트] 새 정부 산업정책, 공약 집착 말고 민간과 협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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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지난해 말부터 온 국가를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청와대 비선(秘線) 게이트는 국민의 열망을 담은 새 정부가 출범하며 일단락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대도 크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 정부에 국민이 바라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국민이 현 정부에 느끼는 심정은 이런 게 아닐까.

정부 주도만으론 제대로 성과 못 내 #문제될 만한 공약도 과감히 버려야

“내가 겪는 어려움이 왠지 모두 정부 탓인 것만 같다. 혜택을 못 받는 나는 억울하고 더 나은 형편의 누군가가 지원이라도 받으면 정부가 원망스럽다. 아이 낳아 키우기도 어려운 세상에 육아 지원도 정부가 해줘야 하고 사교육에 대한 기회 차별도 정부 탓이다. 원청업체의 갑질도 정부 잘못이다. 50세가 채 되기도 전에 비자발적으로 퇴직해야 하는 것도 정부가 역할을 못 한 탓이다. 집값이 올라 돈을 버는 건 집주인이고 나는 임대료가 올라 쓸 돈도 없는데 생활비를 줄여 임대료를 내야 한다. 이렇게 집값을 띄우는 정부가 원망스럽다. 창업하면 빚더미에 앉기 일쑤고 일자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얻기 어렵다. 나는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군대도 다녀왔는데 국가가 내게 해주는 일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일(1)도’ 없는 것 같다.”

국민은 많은 것을 정부가 해주길 원한다. 정부가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은 국민이 세금도 많이 부담해야 하고 그만큼 민간의 자율성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은 세금을 더 내기 싫어한다. 자유를 외치면서도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찌 보면 모순이다.

새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과거보다 강조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거로 보인다. 산업정책에 대해서도 신정부는 미래성장동력 확충과 제조업 부흥 및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공약을 내걸었다.

산업정책은 오래전부터 그 존재나 유용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간략하겐 두 논리의 대립이다. 자원의 배분을 시장에 맡겨야 경제의 효율성이 담보된다는 논리와 시장에 맡기면 시장실패가 일어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논쟁의 중심이다. 정부가 특정 산업을 지원하고 성장시켜 경쟁력을 갖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시장이 이러한 선택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양극단에 있다.

산업화 초기에 경제는 시장실패가 만연해 정부 개입을 통해서만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에 의한 부작용이 쌓이자 정부실패가 더 큰 해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이후 경제 자유화에 대한 움직임이 생기게 됐다. 자유화를 통해 경제가 성장할 거란 장밋빛 예측은 수출과 숙련 근로 부분에서 어느 정도 맞았다. 하지만 미숙련 부분의 근로자들에겐 준비되지 않은 채로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했다. 이로 인해 이전보다 더 큰 어려움에 직면케 됐다.

현재 한국사회에선 대부분 완전한 시장경제나, 정부개입에 양쪽 극단에 대한 환상을 가지진 않은 듯하다. 두 상반된 정책이 보여준 장단점을 역사적 현실로 모두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건 이 두 정책의 적절한 배합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보다 산업정책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시장 자율로 자원을 배분하는 방침을 표방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했다. 그에 따라 시장선택에서 산업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미국뿐 아니라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국가와 일본, 중국까지 경기침체를 극복할 대안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면서 잊혔던 산업정책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이를 산업정책의 부활, 또는 신(新) 산업정책이라 한다.

산업정책은 좁은 의미로는 정부가 특정 산업(군)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어느 한 분야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정책의 효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되어 풀어야 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고 이들이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으로 특정 산업을 선택하느냐의 것 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정책 담당에 대한 부처 간 조정, 업종·기업군·기업규모에 따른 이익배분 조정, 기존 주력산업과 초기단계 신산업 간의 조정 등이 그것이다. 이에 더해 에너지, 규제정비, 구조조정, 산업인력, 기술 개발, 지식재산권 등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결국 산업정책의 범위는 단순히 산업육성에 그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대니 로드릭교수는 ‘산업정책은 전통적이고(traditional), 정통적인(orthodox) 방식으로 처방되는 훌륭한 경제정책’이라고 했다. 산업정책의 상당부분이 생산부문을 위한 공공재의 공급과 관련되어 있는 측면을 지적한 것이다.

결국 새 정부의 산업정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정부주도냐 민간주도냐의 선택이 아니다. 두 경제주체간의 전략적인 협업이다. 자원배분에 관한 선택을 함에 있어 정부도 정보가 부족하지만 민간도 정보가 한정돼 있다. 때문에 누구의 선택도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기술의 발전과 융합에 따라 미래에 대한 예측이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예측 불확실성의 위험도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산업정책의 결과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보다 산업정책 과정에서의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 여기에 정부와 민간의 전략적 협력이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우려와 원망을 해결하려면 정책의 개방과 투명화가 필요하다. 정부가 왜 그러한 정책을 시행하였는지, 나와 내 기업은 어떤 위치에 있고 왜 혜택이나 지원을 받는지, 또는 받지 못하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정책의 개방과 투명화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권력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신정부는 권력이 사유화되는 것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은 투명하지 않으면 정치적인 포획과 부패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미래성장동력 확충과 제조업 부흥 및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공약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육성과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다양한 정책 공약을 내걸었다. 현재 활용 가능한 정보를 모두 동원하여 바른 결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추후 시장상황이 변하면 기대했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상황이 변하기 전에는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최현경산업연구원기업제도연구실장

최현경산업연구원기업제도연구실장

그러므로 정부는 공약집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정책에 담아내기보다는 문제가 있을 법한 정책은 시간을 충분히 두고 파장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악의 경우, 공약대로 실행하는 것이 국민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면 충분한 설명과 함께 과감한 수정이나 폐기를 해야한다. 국민은 공약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를 보고 선택한 것이지 하나하나의 세부 공약을 보고 투표를 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최현경 산업연구원 기업제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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