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그림] 키울리오니스 '바다의 소나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파도는 육지에 가까워질수록 유리알 같은 물방울을 만들어낸다. 멀리 있는 파도는 마치 산봉우리같다. 다양한 크기로 밀려오는 파도의 행렬에서 여러 개의 선율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교묘한 조화를 이뤄내는 다성음악을 떠올리긴 어렵지 않다(1악장 알레그로).

잔잔한 바다 위로 순풍에 돛을 달고 배가 떠난다. 보이지 않는 자연의 손이 배를 떠받치고 있다(2악장 안단테). 파도는 더욱 격렬해지고 배는 금방이라도 휩쓸려 들어갈 것만 같다. 살아있는 세포처럼 징그럽게 묘사된 파도는 맹수의 입처럼 배를 집어 삼킬 것만 같은 기세다(3악장 피날레).

리투아니아 태생의 작곡가 겸 화가 미칼리로우스 콘스탄티나스 키울리오니스(1875~1911)가 3악장 형식으로 그려낸 '바다의 소나타'다. 바다 위에서 시시각각 바뀌어가면서 펼쳐지는 다차원의 풍경을 음악 형식을 빌려 그려냈다.

이 그림을 악보 삼아 연주한다면 '바다'라는 제목의 교향곡쯤 될 것이다. 거대한 파도를 헤치면서 나가는 배의 모습에서 운명과 맞서 싸우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키울리오니스가 그려낸 자연은 바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별.봄.피라미드.태양을 주제로 한 소나타 연작은 인간과 우주를 아우르는 형이상학적 경지와 맞닿아 있다. 소나타는 그림에 담긴 음악적 역동성이나 리듬과도 연결된다.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키가 이들 풍경화에서 낭만주의 음악을 떠올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교회 오르가니스트의 아들로 태어난 키울리오니스는 폴란드 바르샤바 음악원과 독일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데뷔작은 26세 때 발표한 교향시'숲에서'다.

음악뿐 아니라 철학.고대사.천문학.자연과학에도 심취했던 그의 유일한 취미는 산책과 그림 그리기였다. 1904년 바르샤바 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음악을 접고 화가로 본격 활동하기에 이른다. 그가 남긴 3백여점의 템페라화와 판화는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에 있는 키울리오니스 미술관이 소장 중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