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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시선고정 '리얼 쇼'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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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올 여름 열사(熱沙)와 정열의 땅 아프리카를 달군 건 태양이 아니었다. 24시간 타인의 생활을 훔쳐보는 내용의 TV 프로그램 '빅 브라더 아프리카(BBA)'였다. 아프리카 12개국에서 뽑힌 남녀 20명이 동거하고, 카메라는 이를 낱낱이 잡는다-.

이 단순한 구도에 매회 3천만명의 눈이 쏠렸다. "이건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어떤 시도보다 아프리카 대륙을 결속시킨다." 이 프로그램에 쏟아지는 아프리카인들의 상찬이다.

각본 없는 드라마. 출연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reality show)'가 전 세계를 무대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미국에서, 영국에서, 아프리카에서 …,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반응도 뜨겁다=한때 지상파 TV에 몰래카메라 열풍이 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종의 유사 '리얼리티 쇼'다. 이 맥은 요즘 각종 짝짓기 프로그램, 오디션 프로그램, 생존게임 프로그램 등으로 이어진다. 지상파뿐만이 아니다. 케이블.위성 등에는 올 들어 10개 가까운 '리얼리티 쇼'가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음악채널 MTV 코리아가 한달 전 방영을 시작한 'MTV Show me the money'는 신용불량자의 구직 과정과 재기를 그리고 있다. 일종의 한국화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셈이다. 첫 회 출연자인 한 대학생의 경우 인터넷에 회원 1천7백명이 넘는 동호회가 만들어졌다.

그런가 하면 논픽션 전문 Q채널이 방영 중인 '소림사 파이트 스쿨'도 시청률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아마추어 무술인 10명이 중국 소림사에 들어가 정신.육체적인 무술경쟁을 벌여 최종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미국.유럽도 '리얼리티' 잔치=미국에서 올 초 방영된 폭스TV의 '백만장자 조'(Joe Millionaire). 5천만달러를 상속받을 한 남성이 미모의 여성 20명과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 그중 한 사람을 선택한다. 하지만 백만장자로 소개된 주인공은 실제 건설 노동자. 인간의 심리를 시험하는 이 프로그램은 매회 4천만명의 시청자를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이런 '리얼리티 쇼'가 시트콤 장르에까지 진출하는 등 전성시대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폭스.ABC 등이 리얼리티 쇼와 시트콤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을 잇따라 선보일 예정이라는 것. 부유층 자녀들이 시골에서 생활하면서 소 우유를 짜는 장면 등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식이다.

이런 열기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독일에선 두 가정의 주부를 맞바꿔 생활하도록 하는 충격적인 리얼리티 쇼가 곧 전파를 탄다. 현재 미국과 유럽에선 20개가 넘는 리얼리티 쇼가 방영 중인데, 대부분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왜 인기인가=리얼리티 쇼의 장점은 대본이 없는 만큼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친다는 데 있다. 타인의 생활과 행동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효과도 있다. 인기 배우나 작가가 필요없으니 제작비 걱정도 덜 수 있다. 또 이런 프로그램들은 시청자와의 긴밀한 의사소통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쌍방향 시대'에 적합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우선 일종의 '관음증(觀淫症)'을 부추긴다는 윤리적 차원의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이런 유(類)의 프로그램은 과정보다 결론이 중요한 만큼 한번 본 프로그램을 다시 볼 가능성이 작아 경제적 효과도 낮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방송 전문가들은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 쇼가 앞으로도 오락프로의 주도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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