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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구의역 사고 1년, 바뀐 것은 별로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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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이 사고로 숨진 김모씨를 추모하고 있다. 김민관 기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1주기를 맞아 시민들이 사고로 숨진 김모씨를 추모하고 있다. 김민관 기자

200여 송이의 흰 국화와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가득 채운 메모지들. 시민들은 1년 전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숨진 ‘구의역 김군’을 기억했다. 김형자(75)씨는 “손자 생각이 난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서 부모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나”며 눈물을 흘렸다. 경영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쪽지에다 “제가 배운 내용들이 이런 사고를 만들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기업의 이윤극대화가 아닌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해야하는지 깨달았습니다”고 썼다.

사고 책임자들 1년 만에 재판에 넘겨져 #지하철노조 "정치권 약속 이행 매우 더뎌"

28일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스크린도어 수리공 김모(사망 당시 19세)군이 숨진 지 꼭 1년 되는 날이었다. 당시 홀로 작업하던 김군은 역으로 들어오던 지하철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메고 있던 가방에는 컵라면과 나무젓가락이 들어 있었다.

자신을 경영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한 시민이 구의역 사고현장에 붙인 쪽지. 김민관 기자

자신을 경영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한 시민이 구의역 사고현장에 붙인 쪽지. 김민관 기자

사고 뒤 사회는 들끓었다. 시민들은 “너는 나다”는 쪽지를 붙이며 함께 분노했고 청년 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요구했다. 자체 조사와 수사 과정에서 ^2인 1조 작업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보고 없이 김군에게 마스터키를 넘긴 채 작업하도록 승인했으며 ^스크린도어 장애현황 시스템도 활용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한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책임자 처벌과 제도 개선의 움직임도 잘 보이지 않았다

서울동부지검은 사건 발생 363일 만인 지난 26일 은성PSD 이재범(63) 대표와 서울메트로 김모(58) 소장 등 9명을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11월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지 반년 만이다. 일각에선 “수사를 미루다 1주기를 앞두고 여론이 재점화되자 부리나케 수사를 매듭지은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검찰 관계자는 “안전의 책임을 어느 선까지 물을 수 있느냐를 두고 내부 토론이 있었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 등을 참고해 기소했다.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7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구의역사고 진상조사결과 시민보고회. 김씨의 동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7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구의역사고 진상조사결과 시민보고회. 김씨의 동료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제도 개선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안전관련 시민단체 ‘일과 건강’은 “사고 발생 후 7개월간 진상조사를 한 뒤 안전대책 권고안 58개를 서울시에 제출했지만 반응이 미흡했다. 스크린도어 관제시스템 증설 같은 핵심 문제를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스크린도어 유지 보수 등 4개 분야 근로자 141명(1월 기준)을 서울메트로가 직접 고용하도록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김군이 달았던 ‘외주 용역직원’이라는 꼬리표는 떨어졌지만 이들의 신분은 무기계약직이다. 김씨의 동료는 “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지난해 10월 케이블 채널에서 조연출로 일하며 비정규직을 관리하던 이한빛 PD가 죄책감을 느끼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PD의 아버지는 27일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못다 이룬 꿈은 우리가 노력해서 이뤄줄 테니 하늘나라에서 한빛이랑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는 메모지를 붙였다.

이날 정치인들은 사고 현장을 찾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법과 제도를 시급히 고쳐야겠다”고 했고,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죽음의 외주화’라고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 비정규직에 몰리는 데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현장의 사람들은 말이 아닌 대책을 요구한다. 임선재(35) 서울시지하철 노조대의원은 “사고 이후 정치권의 약속 대다수가 지켜지지 않거나 매우 더디게 바뀌고 있어 힘이 빠진다. 제대로 된 변화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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