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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청와대 참모들의 수식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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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라이팅에디터

고정애라이팅에디터

잘못된 언행으로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다. 헬렌 토머스도 그랬다. 미 백악관의 ‘붙박이’ 출입기자였던 그는 89세 때인 2010년 유대인 랍비에게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자신들의 집인) 폴란드나 독일로 가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 백악관에서 짐을 싸야 했다. 2년 뒤 숨졌다.

논란의 그를 떠올린 건 이 문구 때문이다. “대통령은 오고 가지만 헬렌은 영원하다.”

1999년 토머스의 자서전(『백악관 맨 앞줄에서』) 추천사다. 실제 토머스는 1961년부터 50년간 존 F 케네디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다. 백악관의 항수(恒數)였다. 덕분에 현장 관찰자인 그의 관점에서 대통령들 비교가 가능하다. 이런 식이다.

“대통령에 관한 뉴스의 통제는 케네디 행정부 때 시작됐고, 레이건 행정부는 이를 술책으로 변화시켰다. 사실 보도에 관한 통제는 대통령이 바뀌면서도 항상 있어 왔던 단골 메뉴였다.” 리버럴하다고 알려진 케네디와 ‘위대한 소통자’로 불린 레이건이었다. 토머스는 레이건 참모들이 기자들의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퍼스트 독’인 렉시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했다는 의심도 했다.

아들 부시의 영문법 실력은 이미 유명하다. 토머스는 아버지 부시를 두고도 “문법을 무시하는 파격적인 어투를 썼으며 매우 복잡한 생각과 함께 때로는 문장의 필수적 요소인 동사를 빠뜨리는 어법을 썼다”고 기억했다. 클린턴에 대해선 정치자금 모금에 있어 가장 얼굴이 두꺼운 인물로 꼽았다.

우리에겐 ‘토머스’는 없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기자도 오고 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청와대 안에 이전 정권의 기억이 저장되는 데는 경호실 정도다. 그러니 청와대 참모들이 전 정권과 비교할 땐 신중해야 한다. 주변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고 설령 알아도 입을 다물 가능성이 커서다. ‘차별화 욕구가 큰데 굳이…’란 심리다.

최근 참모들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조각(組閣) 명단을 직접 발표했고, 상춘재에 먼저 가 원내대표들을 맞았고 상석(上席)이 없는 원탁테이블에서 함께 오찬을 하는 ‘파격’을 선보였으며, ‘처음으로’ 청와대 말단직원들과 더불어 구내식당에서 식사했다고 전했다. 역대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뿐이라면 대충 맞는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시계추를 더 돌리면 사실과 다른 면이 많다. 파격도 처음도 이례적이지도 않은 행보일 수 있단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쾌조의 출발을 했다. 참모들의 수식어가 오히려 불필요한 듯 보인다.

고정애 라이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