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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 확산되는 정규직 전환, 정부 환심사기 이벤트는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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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공공부문에서 민간 기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가 대기업으로는 처음 신호탄을 당겼다. SK브로드밴드는 인터넷·IPTV의 설치, 수리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직원 5200명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다음달 자본금 460억원 규모의 100% 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SK브로드밴드, AS기사 정규직 채용 #회사 잃게 된 위탁업체들은 큰 반발 #자회사 설립 통한 고용 방식도 논란 #구조조정, 일자리 감소 부작용 우려 #“일회성 아닌 사회적 합의 요구돼”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이 높은 은행권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신한은행은 기간제 근로자 중 사무 인력 일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비정규직 비율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도 준정규직(무기계약직) 3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SK브로드밴드 경우만 보더라도 민간 기업의 비정규직 전환 문제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당장 반발하고 나선 것은 본사 방침으로 하루아침에 회사를 잃게 된 위탁업체들이다.

그동안 5000여 명의 하청업체 직원들을 관리해온 이들은 하루아침에 회사를 잃게 됐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 전국 센터 협의회’ 소속 센터장 100명은 22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대책 회의를 열고 “일방적으로 재계약을 중단하고 위탁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빼가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위탁 업무의 재계약 거부에 대한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항의했다. 업체들에 대한 또다른 차별이라는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이형희 SK브로드밴드 사장은 22일 “지금 같은 간접 관리 방식으로는 고객 중심 서비스 등 본사에서 추진하는 과제를 추진하기 어렵다”며 “본사가 센터 구성원들을 직접 관리하기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라고 자회사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회사 측은 “센터장들을 자회사 센터장으로의 재고용하거나 영업 전담 대리점을 운영할 기회를 제공하는 등 그동안의 기여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청업체 직원들이 소속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조는 “고객·회사·노동자 모두를 이롭게 하는 의미있는 일”이라며 “열악한 노동 조건이 개선되고 고용 불안이 해소될 것으로 본다”며 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새정부 기조에 맞춰 정규직 전환 움직임을 무조건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지적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용 문제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수익성, 경쟁력 강화와 인건비 문제 등과 직결된다”며 “대책 없이 정규직 전환만 좇게 되면 기업의 구조조정,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에서 전환한 정규직과 기존 정규직 간의 임금과 복리 후생 격차도 또 다른 차별 논란을 낳는다. SK브로드밴드처럼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이런 갈등을 줄이는 대안으로 언급된다. 서울시가 용역업체 직원이던 다산콜센터 직원들을 ‘120다산콜재단’을 설립해서 흡수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그러나 자회사 고용은 또 다른 간접고용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고용 안정성은 높아졌을지언정 자회사를 존립해야한다는 법적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고용 경직성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과제다. 박 교수는 “기업마다 인건비 총량은 정해져있는데 대안없이 정규직과 동등한 수준의 근로 조건을 향유하는 사람들만 늘린다면 결과적으로 그 부작용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온전히 합의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일회성으로 그치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질의 일자리를 꾸준히 창출하는 것이 정부에게 주어진 과제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새 정부는 공기업과 민간 기업들에게 각각 다른 정규직 전환 가이드 라인을 내놓아야 한다”며 “엄밀하고 신중한 세부 정책이 나온 다음 이에 대한 정책의 실효성 평가도 뒷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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