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30년 ‘삶의 질’ 세계 10위 청사진 … 당시엔 “세금 폭탄” 우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비전 2030은 노무현 정부가 2006년 발표한 장기 국가발전계획이다. 청와대 정책실이 주도하고 정부 산하 국책연구소와 대학 및 민간 전문가 60여 명이 참여했다. 기획예산처가 여기에 맞춰 장기 재정운용 계획과 전망을 마련했다. 당시 정부는 ‘한국이 2010년대에 선진국에 진입하고 2020년대에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해 2030년에는 ‘삶의 질’ 세계 10위에 오른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국가 장기계획 어떻게 만들어졌나 #청와대 정책실, 민간 전문가 등 참여 #일자리 확대 등 정책 과제 50개 채택 #증세 포함 구체적 재원조달안 빠져

복지 지출 증가 및 제도 혁신을 통해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규모를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21%(2005년 당시 8.6%)까지 끌어 올린다는 것이다. 비전을 실현할 방안으로 사회서비스 일자리 확대 등 50개 정책 과제를 채택했다. 당시 정부는 이를 위해 25년간 1100조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2006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GDP의 2% 수준에 해당하는 재정을 추가로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0년까지는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축소 및 세정 합리화와 투명성 제고 등으로 증세 없이 추진하되, 2011년 이후에는 추가 재원 조달 방안을 국민적 논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고서 발표 후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유승민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이번 계획대로 정책을 추진한다면 막대한 세금 부담으로 인해 현재의 20대와 30대는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2006년 8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다. 이한구 당시 의원은 “집권 1년 반도 안 남은 시점에서 왜 갑자기 구체성도 없고, 실현 가능성도 없으며, 재원조달 내용도 없는 구호를 제시했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전재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정부가 용역 비용 10억원을 들여 ‘천국’을 그렸지만, 그곳에 가는 방법과 길은 제시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비전 2030 작업에 참여한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 운용 확대의 방향성은 제시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증세를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빠져 당시 정치권으로부터 ‘세금 폭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은 “정권 말기였기 때문에 증세 방안을 인위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향후 사회적 선택’이라고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비전 2030은 당시 여당에서도 지지를 못 받았다. 이듬해 치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증세 프레임이 부담으로 작용한 탓이다. 정덕구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민은 미래에 암이 걸리지 않는 것보다 당장 목에 걸린 가시를 빼주는 게 급하다”고 말했다. 이광철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도 “지금 국민들은 당장 내일을 얘기하는데 정부에서는 2030년을 얘기하는 게 문제”라며 “국민들에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미 정서가 강했던 당시 진보 진영에서 ‘FTA 체결 확대’ 과제를 ‘신자유주의’라고 문제 삼기도 했다.

결국 비전 2030은 빛을 못 보고 정권 교체와 함께 사실상 폐기됐다. 비전 2030 작성을 주도한 변양균 전 장관은 2012년 출간한 그의 책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에서 비전 2030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잡고 세운 구체적인 재정계획이었다”며 “세 부담 증가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두려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회고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장기 비전을 기반으로 1년짜리 예산 편성의 불합리성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대통령 임기를 고려했을 때 정치적 지지를 받기에는 추진과 발표 시점이 다소 늦었다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함승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