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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35인의 36색 연작 애니메이션 '겨울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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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본 전통 시문학 장르로 렌쿠(連句)라는 게 있다. 여러 시인이 모여 앞사람의 시구를 뒷사람이 이어가며 시를 읊는 형식이다. 일종의 끝말잇기다. 인형애니메이션의 세계적인 대가 가와모토 기하치로(川本喜八郞)는 2000년 무렵 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에도 시대의 대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1644~1694)의 렌쿠 '겨울날'을 연작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의 이런 생각에 '이야기들의 이야기'로 잘 알려진 러시아의 거장 유리 놀슈타인이 즉각 화답했다. 뿐만 아니다. 벨기에의 라울 세르베, 러시아의 알렉산더 페트로프, 캐나다의 코 회드만과 자크 두루엥, 중국의 왕바이룽, 영국의 마크 베이커 등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들도 동참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다카하다 이사오(高畑勳), '아타마 야마(頭山)'로 각종 단편애니메이션 상을 석권한 야마무라 고지(山村浩二) 등 일본의 유명 감독들도 나섰다. 이들 35명의 애니메이터가 36수의 짤막한 렌쿠를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 '겨울날(Winter Days.라바메이저 DVD 출시)'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터들이, 종이.인형.컴퓨터그래픽.유화.핀스크린.점토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해, 각자 시구에서 받은 영감을 창의적인 영상으로 표출해냈다는 것이다. 풍류에 몸을 맡기고 정처없이 떠도는 바쇼 자신의 처지를 읊은 '겨울날'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시대를 초월해 서정적 영상으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2003년 일본 미디어 예술제 대상 수상작. 3만원. 02-765-8312.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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