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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미야케 섬 소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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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본 이즈제도의 미야케시마(三宅島)는 태평양의 절해고도입니다. 바로 옆 일본해구 때문에 지진과 화산의 섬입니다. 이 섬의 한 소년이 시시각각 변하는 활화산의 움직임을 눈여겨봅니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화산 가스의 색깔과 양, 뿜어나오는 형태를 또박또박 노트에 적었습니다. 학교 온도계로 온천수의 온도도 쟀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혼자 그렇게 했습니다.

1951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물물이 마르고 산의 나무가 시들어 갔습니다. 화산이 터지는 게 아닐까, 섬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본토에서 건너온 지질 전문가들도 답답했습니다. 자료가 없으니 정확한 분화 시기를 몰라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소년이 다가와 "혹시 도움이 될지 몰라서…"라며 노트를 내밀었습니다. 지질학자들은 무릎을 쳤습니다. 한 소년의 꼼꼼한 관찰 기록이 섬 주민 2700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일본 대문호인 야마모토 유조(山本有三)의 '마음에 태양을 가져라'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고교생 아사누마 도시오(淺沼俊夫)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주인공 아사누마는 그 후 고교를 마치고 과학박물관의 하급 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야간대학을 다니며 학문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유명한 지질학자로, 지바(千葉)대학 지구과학 교수까지 됐습니다. 아사누마의 모교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1회 졸업생인 그에게 기념강연을 부탁했습니다. 아사누마가 후배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자연을 아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시마무라 히데키, '교실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지구 이야기')

학문의 길은 힘든 것 같습니다. 아사누마처럼 끈질기게 공부해도 쉽사리 길이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15세 때 학문에 뜻을 세운 공자도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생각해 보았으나 무익할 뿐 배움만 같지 못하더라(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無益 不如學也)"고 했습니다. 험난한 구도의 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대입 원서접수 서버를 공격한 수험생들이 붙잡혔습니다. 자신의 합격을 위해 남의 원서접수를 가로막은 연루자가 10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도 있었습니다.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일본 수험생은 야마모토의 소설은 반드시 읽습니다. 시험에 자주 나오는 필독서입니다. 먼 이웃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공부 기술을 익히기 전에 학문의 기본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