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검찰 초유 지도부 공백사태... "인사 태풍 전조 아니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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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논란이 된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18일 동시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과 법무부가 초유의 지휘부 공백 사태로 빠져들었다.

대규모 검찰 개편 예고, 일부선 "서초동에 겨울이 왔다" 토로

이날 정상 출근한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은 나란히 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지 하루만이다.

이 지검장은 이날 오전 8시28분쯤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공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감찰조사에는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그간 많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덧붙였다. 안 국장도 14분 뒤인 오전 8시42분쯤 “이번 사건에 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현 상황에서 공직 수행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어 사의를 표명하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의 표명과 무관하게, 앞으로 진행될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국정 농단’ 수사를 지휘한 이 지검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사와 관련, ‘조사대상’으로 지목됐던 안 국장과 지난 달 24일 만찬을 했고, 그 자리에서 양측 갼부들에게 돈봉투를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법무부와 대검 측은 “일단 감찰이 시작된 이상 바로 사표 수리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업무에서 배제된 후 집에 머무면서 감찰에 대비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와 대검은 검사 7명을 포함한 22명 규모의 감찰단을 구성했다.

법무부와 검찰로선 ‘지도부 공백’이 당면 문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공석인 가운데 이 지검장과 안 국장까지 물러나기로 하면서 검찰 지도부의 빈 자리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창재 법무부 차관(장관 대행)도 정부부처 수장 일괄 사표 제출 때 사표를 낸 상태다. 이 차관은 현재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혼란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여러 곳에서 감지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없는데다 법무ㆍ검찰의 최고위급 인사들까지 동시에 사의를 표명해 검찰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후임 검찰총장 임명까지는 국회 청문회 실시 등 한 달 이상이 걸려 지도부 공백 사태가 의외로 길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동시에 공석이었던 때는 이명재 총장 시절로 단 4일간 동시 공석 상태였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이번 ‘돈봉투 만찬’에 대한 감찰이 마무리되면 검찰 조직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검사들 사이에서는 “지금 상황이 청와대발 인사태풍의 전조가 아니겠느냐” “새 정부가 검찰 라인도 전면 개편을 시도할 수 있겠다"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검찰총장 후보군 ‘빅3’(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차장) 중 둘이나 나가게 돼 향후 검찰 지도부 라인이 어떻게 재편될지 다들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총리 인준과 함께 법무부 장관 인선이 이뤄지면, 이르면 6월 중간 간부급 이상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간부는 “소위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되던 검사들이 용퇴하거나 일선에서 물러나는 등 규모가 있는 검찰인사 등 개편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검찰이 처한 상황을 노무현 정부 초기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익명을 원한 한 검찰 간부는 “노무현 정부 초기(2003년)에는 당시 청와대가 검찰에 손을 안 대는 식으로 개혁을 추진해 검사들 사이에선 ‘서초동의 봄’이라는 말이 나왔었다”며 “반면 지금은 메스를 들이대는 식으로 검찰을 압박해 정반대로 ‘서초동에 겨울이 왔다’는 말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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