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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국민보다 대통령 눈치만 살핀 교육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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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윤서 기자 중앙일보
남윤서 사회1부 기자

남윤서 사회1부 기자

“새 정부 공약과 대통령 지시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지난 12일).

“대통령 업무지시 및 국정 역사 교과서 폐지 결정으로”(지난 16일).

중·고교 국정 역사 교과서를 폐지하기로 하면서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보도자료 첫머리다. 교육부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하자 당일 오후 급히 ‘국정 역사 교과서 폐지 결정’이란 제목의 자료를 냈다. 이어 나흘 만인 16일 역사 교과서는 검정으로만 발행하도록 교과서용 도서 고시를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준식 교육부총리는 지난해 12월 본인이 결재한 ‘국·검정 혼용’ 고시를 다섯달 만에 번복했다. 교육을 7년여 취재해 온 기자에게도 교육부의 대처는 참 발빠르다 싶다.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1년7개월 만에 폐지되게 됐다. 정권에서 국정화를 강행할 때나, 폐지를 지시 할 때나 교육부 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중앙포토]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1년7개월 만에 폐지되게 됐다. 정권에서 국정화를 강행할 때나, 폐지를 지시할 때나 교육부 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중앙포토]

국정교과서가 결국 폐기될 것이란 전망은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유력해졌다. 하지만 탄핵 직후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은 ‘국·검정 혼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폐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랬던 교육부의 신속한 대처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2015년 10월 박근혜 정부 발표 이후 1년7개월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역사 교과서를 놓고 극심한 갈등이 빚어졌지만 교육부로부터 사과 표시도 없다.

교과서 문제를 놓고 교육부 관료들의 의견이 천편일률인 것도 아니었다. 한 관료는 기자에게 “교과서마다 내용이 다르면 한국의 정사(正史)가 도대체 무엇이냐. 학생들에게 정사를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국정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료는 “역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전환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다시 국정으로 간다는 것을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정부가 국정화를 강행할 때도, 새 정부가 이를 폐기할 때도 교육부 안에서 격론이 벌어졌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관료들로선 “수장인 대통령의 지시를 받드는 게 행정부”라는 핑계를 댈지 모른다. 그렇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교육 정책이 바뀌어도 당연하다는 것인가. 정권 따라 수시로 바뀌는 교육 정책을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국정화 강행에서도, 폐지에서도 교육부가 국민보다는 대통령만을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무원이 가장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헌법이다. 헌법은 제7조에서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법으로 보장하는 것도 다름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요구다. 교육 관료들이 이를 눈감는다면 ‘교육부 폐지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교육부 관료들의 해명이 궁금하다.

남윤서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