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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회사가 물꼬 트면 우르르, 속 보이는 식품값 줄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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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라면에서 맥주·음료까지 먹거리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그런데 인상 시점이 묘하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본격화된 지난해 10월 이후 최근까지 가격 인상이 집중된 것이다. 업체들이 국정 공백기를 틈타 가격을 올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라면·맥주 서민 먹거리 가격 들썩 #콜라·사이다 평균 5~7.5% 올라 #업체 인건비 상승 등 내세우지만 #담합 조사 피하기 위한 꼼수 지적 #“새 정부 들어서면 점검 필요”

또 새 정부 출범 직후엔 가격을 올리기 부담스러운 것도 가격 인상 러시를 불러온 요인으로 꼽힌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8일부터 칠성사이다·펩시콜라·레쓰비(캔커피) 등 7개 제품의 편의점 판매가격을 평균 7.5% 인상했다. 최소 50원에서 최대 200원씩을 올린 셈이다. 롯데칠성음료는 가격 인상을 편의점에 우선 적용하되, 향후 대형마트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인상은 지난 2015년 1월 인상 후 약 2년 4개월 만이다. 대선을 하루 앞두고 시행된 가격 인상에 대해 롯데칠성음료 측은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경쟁사가 일부 제품 가격을 2~3번 올리는 동안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왔다”며 “원부자재 가격, 인건비 상승 등 외부 요인으로 가격 인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가격 인상은 한 업체가 가격을 먼저 올리면 나머지 업체가 줄줄이 따라가는 식으로 이뤄진다. 롯데칠성음료에 앞서 코카콜라는 지난해 11월 이미 가격을 5% 올렸다. 지난 1일 삼양은 삼양라면·불닭볶음면·짜짜로니 등 주요 라면 제품의 가격을 평균 5.5% 인상했는데, 이는 지난해 12월 농심이 신라면·너구리 등 12개 제품의 가격을 5.5% 올린 데 대한 대응 성격이 짙다.

맥주·햄버거 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오비맥주는 카스·프리미어OB·카프리 등 주요 품목의 출고가를 평균 6% 올렸고, 이어 업계 2위인 하이트진로는 하이트와 맥스 등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33% 올리면서 보조를 맞췄다. 1월에 맥도날드가 햄버거 값을 올리자 2월에는 버거킹이 뒤를 따랐다.

이같은 순차적 가격 인상은 담합 의혹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업체는 “어쩔 수 없는 인상”이라고 주장한다. 물류비와 인건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도저히 제품 가격을 유지하기 힘든 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가격 상승요인이 없진 않지만 아무래도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가격 인상이 더 어렵다는 것이 식음료 업계의 판단”이라면서 “한 업체가 먼저 물꼬를 트면 나머지가 따라가는 식이 여론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긴 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인 BBQ의 가격인상만 놓고 봐도 그렇다. BBQ는 당초 지난 4월 20일 10% 내외의 가격 인상 카드를 들고 나왔다가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대에 부딪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 속에 꼼수 인상에 나선다고 판단한 농림부는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까지 운운하며 가격 인상 저지에 나섰다.

하지만 BBQ는 지난 1일 재차 가격 인상의 불가피성(가맹점주 요구)을 내세워 10개 품목에 대해 10% 가격을 올렸다.

주요 식품 가격 인상이 한동안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식음료는 비싸다고 안 사먹을 수 없는, 가격탄력성이 작은 대표적인 품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고통지수’는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다. 실업률(4.3%)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더한 경제고통지수는 6.4로 2012년 1분기(6.8) 이후 5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중앙대 이정희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정부는 집중관리품목까지 정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물가를 챙겼지만 박근혜정부는 경기 침체로 물가 관리의 필요성을 못느꼈다”면서 “다른 외부 요인 없이 국정공백 시기에 갑자기 가격인상 요인을 내세우는 것은 타당성이 별로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서민 물가 상승은 결국엔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새 정부에서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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