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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성장' 카셰어링, 범죄 악용ㆍ사고 고리 끊어야 장밋빛 미래 열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범죄는 의외로 사소한 지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현관문이 열려 있는 집에 침입해 물건을 훔친 절도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범행을 결심하고 문을 열어 둔 집을 찾아 범행 했을거라 생각했지만 경찰관의 설명은 달랐다. 애초에 물건을 훔치려고 문이 열려 있는 집을 노린게 아니라, 지나가다 문이 열려 있는걸 보고 순간적으로 물건을 훔쳤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이 생각난 건 카셰어링(자동차 공유) 서비스 때문이었다. 얼마 전 부산에서 아파트와 학교 등에 침입해 자전거 고가의 자전거 22대와 자동차 공구 50점 등 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10대 청소년 8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10대 학생들이 크고 무거운 자전거와 공구를 어떻게 대량으로 훔쳤을까 싶어 보니 카셰어링 서비스를 통해 빌린 차량에 훔친 물건을 싣고 도주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면허조차 없지만 부모 명의 신용카드로 손쉽게 차를 빌릴 수 있었다.

카셰어링은 특정 장소에 세워둔 차를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시간만큼 예약을 하고 돈을 지불한 뒤 쓸 수 있는 서비스로, 최근 가파른 성장을 이뤄가고 있다. 국내 1위 카셰어링 업체 쏘카 회원수는 2012년 3000여 명에서 올해 초 250만 명으로 늘었고, 매출은 같은 기간 3억원에서 907억원으로 뛰었다. 경쟁 업체 그린카 역시 회원수가 210만 명에 달한다.

성장의 가장 큰 요인은 카셰어링의 간편함이다. 기존 렌트카 서비스와 달리 업체를 찾아가 면허증을 확인하고 계약서를 작성해 차를 빌리는 등의 절차가 없다. 대신 휴대전화 어플로 면허증과 결제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누구와도 대면할 필요없이, 터치 몇번으로 근처에 있는 차를 원하는 만큼 빌릴 수 있다.

하지만 간편함은 양날의 검이다. 쓰기 편한만큼, 악용되기도 쉽다. 면허가 없는 청소년이라도 부모 등 가족들의 면허증을 도용해 처음 한번만 등록하면 이후부터는 쉽게 차를 빌릴 수 있다. 차를 빌리는 과정에서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 단지 휴대전화만 있으면 된다. 업체는 현장에서 직접 차량을 관리하지 않으며, 누가 차를 빌리고 운전대를 잡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실제 부산과 비슷한 범죄 악용 사례나 무면허 사고 사례가 꽤 많다. 지난달 3일 인천 남동경찰서에 붙잡힌 고등학생 9명은 면허도 없이 카셰어링으로 총 79대의 차량을 빌려 100회 이상 도로에서 몰고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는 동안 이들은 20번이나 교통사고를 냈고, 수리비ㆍ과태료는 1억원에 달했다. 또 지난 2월 광주에서 고등학생이 부모 명의로 차를 빌려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통계에서도 이런 위험이 드러난다. 카셰어링 서비스가 본격 도입된 2012년을 기점으로 무면허 렌트카 사고 건수가 급증했다. 지난 2월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10~2011년 각각 60건에 못 미쳤던 사고 건수는 2012년 94건으로 늘었고, 2015년에도 83건이 발생했다. 또 110명 수준이었던 부상자 수는 2012년 149명이 됐고 2015년 177명까지 늘었다.

때문에 최근 몇년간 카셰어링 서비스의 허술한 인증 절차에 대한 지적이 계속됐다. 쏘카와 그린카 등 카셰어링 업체들은 지난달 말에야 운전면허증과 결제카드, 휴대전화의 명의가 모두 일치해야 신규 회원 가입을 할 수 있게 인증 절차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역시 기존과 같이 명의 도용 한 번이면 이후부턴 쉽게 뚫을 수 있다. 열어 둔 문은 닫았지만 ‘허술한 자물쇠’를 달아 놓은 수준인 것이다.

업계에선 "범죄에 악용하려고 마음 먹으면 아무리 인증을 강화해도 완전히 막을 순 없는 것 아니냐"는 푸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고를 내려고 하기보단, 호기심이나 순간의 욕심 때문에 차가 필요한 청소년들이 훨씬 많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튼튼한 자물쇠만 달아놓아도 우발적인 범죄와 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더 빠른 성장이 예상되는 카셰어링 시장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런 논란은 초기에 확실히 뿌리 뽑을 필요가 있다.
윤정민 산업부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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