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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반(反) 트럼프 이란 감독의 시대 고찰 ‘세일즈맨’

중앙일보

입력

세일즈맨 / 영화사 제공

세일즈맨 / 영화사 제공

감독‧각본 아쉬가르 파르하디 출연 샤하브 호세이니, 타라네 앨리두스티 촬영 오셍 자파리안 편집 하이데 사피 야리 음악 사타르 오라키 장르 드라마 상영 시간 123분 등급 15세 관람가



Tip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알고 보면 소름 두 배.  

[리뷰]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 신작 ‘세일즈맨’

★★★★ 치명적인 가정법의 장인(匠人),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명성을 확인시키는 또 하나의 수작이다. 삶의 거대한 인과관계가 빚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포착해, 피치 못할 도덕적 기로에 서게 만드는 그의 주특기다. 이를테면 어느 젊은 이란 부부의 별거가 한 임산부의 유산, 살인죄 기소로까지 이어진다든지. 이 기막힌 사연은 파르하디 감독의 전작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이 특별한 영화는 그에게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이란 최초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안겼다. ‘세일즈맨’은 그 연장선에 있다(주연을 맡은 샤하브 호세이니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최고의 ‘눈물 씬’을 만든 바로 그 배우!).

주인공은 아서 밀러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세일즈맨과 그 부인을 연기하는 젊은 부부 배우 라나(타라네 앨리두스티)와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옛 터전이 파괴되고 무미건조한 도시가 발 빠르게 그 빈자리를 대체하는 격변의 장이다. 밀러가 희곡에 묘사한 1940년대 뉴욕처럼. 부부는 살던 건물이 무분별한 개발 공사로 붕괴 위기에 처하자, 급히 이사를 가게 된다. 며칠 뒤 혼자 집에 있던 라나는 끔찍한 변을 당한다.

그날 라나가 혼자 있지 않았다면, 전 세입자의 짐을 억지로 빼지 않았다면, 갑자기 이사하지 않았다면, 건물이 붕괴하지 않았다면…. 에마드가 탄식하는 무수한 가정 중 가장 얄궂은 것은 그가 공연에서 세일즈맨 역을 맡았다는 사실이다. 세일즈맨은 아무 의미 없는 나날에 지쳐 충동적인 일탈로 죽음에 내몰리는 초로의 남자다.

영화 초반 별도의 긴장감을 자아내던 극 중 연극은 라나가 불행을 겪는 시점부터 에마드 부부의 실생활과 분간하기 힘들 만큼 뒤엉킨다. 관대하고 존경받는 시민이자, 누구보다 세일즈맨을 잘 안다고 믿어온 배우 에마드는 어느 순간, 현실에 실존하는 세일즈맨을 마주한다. 이 엉망진창의 무기력한 남자를, 그는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파르하디 감독의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그의 질문에 대한 관객 저마다의 답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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