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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펜, 졌지만 지지 않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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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성향인 국민전선(FN) 소속 프랑스 대선 후보 마린 르펜 [사진 르펜 페이스북]

극우성향인 국민전선(FN) 소속 프랑스 대선 후보 마린 르펜 [사진 르펜 페이스북]

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은 패배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르펜이 졌을 뿐, 정치인 르펜은 지지 않았다. BBC는 “르펜과 지지자들은 다른 방향에서 성공한 선거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전망치보다 높은 34% 득표 #대중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승복연설서 국민전선 개혁 선언 #저변 확대 위해 당명도 바꾸기로 # #

‘앙마르슈!(En Marche!)’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뒤 르펜은 지지자들에게 “마크롱 후보에게 전화해 승리를 축하했디”고 말했다. 그리고 당의 혁신을 선언했다. 그는 “국민전선은 새로워져야 한다”며 “우리의 운동을 근본적으로 탈바꿈시키겠다. 애국자들은 함께하자”고 말했다.
국민전선의 플로이앙 필리포 부대표는 “변혁의 일환으로 당 이름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전선이라는 당명이 더 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르펜은 승복 연설을 통해 새로운 시작을 알린 셈이다 .

르펜은 이번 결선투표에서 33.9%를 득표했다. 여론조사가 전망치보다 약간 높은 수치다. 1972년 창당 이래 국민전선이 거둔 가장 뛰어난 성과다. 2002년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대선 결선에 진출했지만 기성 정치권의 분열로 인한 어부지리였고, 그의 결선 득표율은 17.8%에 불과했다. 장마리의 다섯번 째 대권 도전이었다.

그러나 르펜은 2012년에 이은 대선 재수만에 아버지의 2배에 이르는 지지를 얻어냈다.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는 등 당의 입지를 흔드는 아버지를 내쫓고 이미지를 쇄신한 덕에 가능한 결과였다. 세계화에 소외된 노동자와 서민층을 공략해 선거판의 화두를 ‘반세계화·반유럽연합(EU)’으로 끌고가는 전략적 면모도 보였다.

2002년 장마린이 결선에 진출했을 때, 맞붙었던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장마린과 한 무대에 서는 것도 거부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부인하는 극우 인사를 정치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지 표현이었다.
올해 대선에서 르펜과 국민전선의 입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르펜은 마크롱과 TV 토론을 벌였고, 누구도 이에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BBC는 “르펜이 정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해석했다.

르펜은 일단 다음달 치러지는 총선에 집중할 계획이다. 대중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지만 단 2석 뿐인 현 의석 수를 늘리지 않고는 저변 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언론들은 국민전선이 현재 제 1당인 중도우파 공화당 의석의 일부를 흡수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전선과 르펜이 세를 더 확장하는 발판을 마련한다면, 또 마크롱의 국정 운영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극우 바람은 5년 뒤 더 위협적으로 몰아칠 수 도 있다. 이미 프랑스에선 르펜의 대권 3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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