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鼓腹擊壤<고복격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0호 29면

중국의 대표적 태평성세(太平盛世)로 요(堯)와 순(舜) 두 임금의 치세 기간인 요순(堯舜)시대가 곧잘 꼽히곤 한다. 그러나 요 임금은 천하(天下)가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늘 궁금했다. 결국 세상을 다스린 지 50년이 됐을 때 평복 차림으로 민정(民情)시찰을 나섰다.

마침내 강구(康衢)라는 번화한 거리에 이르러 한 젊은이의 노래를 듣게 됐다. 노래란 것이 예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들의 마음속에 담긴 정서를 꾸밈없이 풀어내지 않든가.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건 모두가 임금의 지극함 덕택이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임금이 정한 대로 살아간다네(立我烝民 莫匪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

백성들이 근심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건 임금의 따뜻한 보살핌이 있기에, 그리고 민초들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것 또한 임금이 잘 이끌기 때문이라는 칭송이었다. 여기서 번화한 네 거리를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며 평화로운 모습을 연출한다는 강구연월(康衢煙月)이란 말이 나왔다.

요 임금이 발길을 옮기자 이번엔 한 노인이 한 손으론 배를 두드리고 다른 한 손으론 흙덩이를 치며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걸 볼 수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며, 밭을 갈아 먹고 우물 파서 물을 마시니,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인가(日出而作 日入而息 耕田而食 鑿井而飮 帝力何有于我哉).”

노인은 요 임금의 선정이 정치의 고마움을 알게 하는 그런 정치가 아니라, 아예 그 고마움조차 느끼게 하지 못할 정도의 위대한 정치라는 점을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며(鼓腹擊壤)’ 노래한 것이다.

그런 정치에 대한 갈망은 이후 끝없이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틀 뒤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다. 그 대선에서 승리해 우리의 새로운 리더가 될 이는 과연 북핵(北核) 위기를 풀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고, 또한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제대로 창출해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교차한다. 후회 없는 한 표 행사로 우리의 밝은 미래를 힘차게 열어야 할 것이다.

유상철
논설위원
you.sangchu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