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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ㆍ美 간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사드 갈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를 둘러싼 갈등이 진실공방으로 치닫고 있다. 사드 배치 비용 부담을 둘러싼 마찰이다.

美 NSC 보좌관 “사드 재협상 하게 될 것” # “기존 합의는 새 협상 전까지만 유효” # 美 의회 보고서 “韓, 필요한 비용에 기여해야” # 韓 정부 “미국이 비용부담 기존합의 재확인” # 전문가 "사드로 한ㆍ미 동맹 균열 가능성" #

지난달 30일 오전 9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허버트 맥매스터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전화통화를 한 뒤 “한국이 부지와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사드 체계의 전개 및 운영ㆍ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3시간 뒤인 현지시간 30일 오전 9시(한국 시간 30일 오후 10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 녹화(실제 녹취가 공개된 것은 3시간 후)에서 맥매스터는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그는 “사실 내가 한국의 카운터파트(김관진 실장)에게 말한 것은 ‘어떤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는 그 기존 협정은 유효하며, 우리는 우리 말을 지킬 것’이란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미 대통령의 발언을 부정하는 것이다. (기존 협정을 지킬 것이라는) 그런 게 아니었다(that’s not what it was)”고 했다.

김관진(왼쪽), 맥매스터(오른쪽)

김관진(왼쪽), 맥매스터(오른쪽)

또 “그렇다면 사드 배치 비용을 누가 부담할 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엔 “사드와 관련된 문제는 (향후) 우리의 모든 동맹국들과 하게 될 것과 마찬가지로 재협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맥매스터의 주장은 ‘사드 비용 재협상’을 전제로 ‘기존 합의 준수’를 밝혔다는 것이다. 진위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맥매스터의 말이 맞을 경우 김관진 실장은 ‘재협상’ 부분을 잘라내고 ‘기존 합의 재확인’만 강조한 것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NBC방송 인터뷰에서 맥매스터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사드건 다른 시스템이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에 더 많은 역할을 지우도록 계속해서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자가 “최소한 사드 비용에 대한 논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그런 건 아니다(No). 트럼프 대통령은 전세계 국가(동맹과 파트너)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10억 달러 한국 부담’ 발언 이후 2인자인 부통령과 백악관 안보 책임자가 트럼프를 거들며 한국에 ‘사드 비용 부담’이란 공을 떠넘긴 셈이다.

백악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그동안 트럼프는 사적인 자리에선 ‘사드 비용 한국 부담’ 이야기를 종종 해 왔다”며 “그러나 이를 현시점에서 공개적으로 터뜨릴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가 사드 비용 문제를 제기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주목했다. 지금 이 문제를 각인해 둬야 추후 방위비 분담금 협상 시 ‘전력 증강 부담분’이라는 명목으로 사드 비용을 떠넘길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지난달 28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가 배치된 경북 성주골프장에서 발사대 주변을 미군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30분 간격으로 차량이 지나가는 것으로 볼 때 발사대 주변 순찰을 도는 것으로 보인다. 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28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가 배치된 경북 성주골프장에서 발사대 주변을 미군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30분 간격으로 차량이 지나가는 것으로 볼 때 발사대 주변 순찰을 도는 것으로 보인다. 프리랜서 공정식

미 의회에서도 북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군비 증강 부담을 한국이 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의회의 입장을 반영하는 의회조사국(CRS)은 2년 여전 ‘괌: 미국 군사력 배치’란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어 “(미국이) 괌에 사드를 배치하는 등 군사력을 증강한 것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한 일환”이라며 “한국이 이에 필요한 비용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CRS는 구체적 방안이나 금액은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은 2006년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의 괌 이전 계획에 합의할 당시 이전 비용의 60%를 부담하기로 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사드 비용을 둘러싼 마찰이 한ㆍ미 간의 보다 심각한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래리 닉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진보 정권이 들어서고 북한 친화적인 행동에 나설 경우 트럼프가 이를 비난하며 한ㆍ미 동맹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며 “주한미군의 일부 혹은 전면 철수 주장까지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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